세상 어떤 글도 무의미하지 않다
내 자신에 대해 꽤 많이 알고 있다고 말하면 과장일까? 대부분 사람이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1년 6개월. 창살 안에서 글을 썼다. 처음에는 글이 생각에서 비롯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이 생각 저 생각 떠오르는 대로 적었다. 생각을 쓰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계속 똑같거나 비슷한 말만 되풀이했고, 쓰는 행위가 지루하고 무가치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후로, 살아온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인생 경험은 쓸 거리를 풍부하게 만들어주었다. 쓸 게 많아지니까 생각도 다채로와졌다. 보고 듣고 경험한 실체와 머릿속 관념이 섞여 한 편씩 완성되는 걸 확인하며, 나는 글쓰기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 때는 내가 욕심을 부렸구나. 그 시절에는 내가 좀 어렸구나. 그 사람을 좋아했었구나. 억울하고 분했구나. 어리석었구나. 나는 가방과 노트북과 펜과 수첩을 좋아하는구나. 작은 일에도 상처를 잘 받는 편이구나. 사람 관계에 큰 미련을 두지 않는 존재이구나......
낯설기도 했고 반갑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내 자신이라 여기며 살았는데, 글 쓰는 동안 내가 가장 몰랐던 존재가 나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1년 6개월. 생애 처음으로 글이라는 걸 쓰기 시작하면서 깨닫게 된 최고의 진실은, 내가 글을 더럽게도 못 쓴다는 거였다.
낯선 나를 만나는 이질감. 글쓰기 실력이 형편없다는 자괴감. 두 가지 감정 사이에서 곤혹스러웠다. 계속 쓸 것인가. 아니면 이쯤에서 접을 것인가.
이런 고민조차도 태어나 처음 해 보는 것이어서, 어떤 결정과 선택을 내려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혹시 이런 걸 두고 사유라고 하는 건가? 이러다가 철학자 되는 건 아닐까?
퀘퀘한 방에서, 식구통을 통해 들어오는 식은 밥을 먹으면서, 온몸에 문신 그려진 이들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면서, 지저분한 옷과 이불 탓에 가려운 몸을 긁어대면서, 나는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을 했다.
어쨌든 계속 써 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결정에 영향을 미친 요소는 시간이었다. 고작 몇 개월 가지고 나와 글쓰기의 관계를 평가하고 분석하는 것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못 써도 쓰려고 노력하는 동안
나를 붙잡고 늘어진 시간은
글을 쓴 것이나 다름없다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스스로 정한 한계 안에서 숨막히듯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눈물이 났다. 내가 나를 가두고 막았으니 불쌍하고 애처로웠다. 허황된 욕심과 끝도 없는 욕망이 결국은 나를 이곳으로 오게 했구나 한탄도 했다. 늘 삶의 밖에 두었던 가족이 사실은 나의 전부였구나 깨달았을 때 손톱으로 심장을 긁었다.
글 쓰는 동안 겪은 눈물과 위로와 후회와 반성. 세상만 보고 살다가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여기에 비하면 잘 쓰고 못 쓰고는 대수롭지 않았다.
A4용지를 담는 박스 몇 통에 내가 쓴 글이 수북이 쌓였다. 단단히 밀봉해서 집으로 가져왔다. 1년 6개월 동안 매일 썼던 '형편없는' 글은 지금도 쪽방 책장 맨 위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자리하고 있다.
책으로 낼 만한 글이 아니다. 세상 빛을 볼 수 있는 글이 아니다. 누군가로부터 잘 썼다 한 마디 기대할 만한 글도 전혀 못 된다.
지금까지 여섯 권의 책을 출간했다. 가장 아끼는 글 뭐냐고 묻는다면, 저어기 책장 위에 올려져 세월 속에 묻힌 '못 쓴 글'이라고. 한 번 살아보겠다고 끄적였던 감옥에서의 글 덕분에 기어이 살아낼 수 있었다고. 이렇게 답변하는 동안에도 훅 하고 눈물이 올라와 고개를 흔들고 있다.
삶이란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어떤 글도 무의미하지 않다.
글을 쓰고, 자신이 쓴 글을 읽고. 사는 건 그런 거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