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느리게 사는 인생의 쾌락

백지를 앞에 두고

by 글장이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느릿느릿 움직이는 건 곧 죽음이나 다름없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쏜살같이 뛰어가야 하고, 돌격 앞으로! 주저없이 질주할 수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흔히 인생을 전쟁터에 비유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이겨내야 하고, 이기기 위해서는 악착같이 달려야만 하며, 돈과 능력과 권력과 명예를 쟁취해야만 승리할 수 있다고. 누가 이런 말을 했는지 딱 꼬집어 가리킬 수는 없지만, 평생 동안 귓가에 맴도는 것처럼, 그렇게 살았다.


절반 넘게 살아 보고서야 깨달았다. 이곳은 전쟁터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총을 들고 전력질주했던 시간들, 아! 전부 어쩌란 말인가. 내가 쏜 총에 맞아 쓰러진 수많은 사람들, 전부 어찌 해야 하는가. 그들이 쏜 총에 갈기갈기 찢어진 나의 상처와 아픔들은 모두 어째야 하는가.


10년째 새벽 기상을 실천하고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다양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며 수도 없이 강조했건만, 사람들은 대부분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할 엘로드가 '모닝'에 '미라클' 만들라고 했더니 전 세계가 밑줄 긋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내 목소리를 갖지 못했다.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스티브 잡스가 하면 명언이 되고 내가 하면 그저 그런 말이 된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한 사람도 많다. 적어도 나는 꽤 많은 '아군'에 둘러싸여 있지만, 아예 목소리 자체를 내지 못하는 사람도 허다하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소연할 때도 없고, 피 철철 흘리는 상처 입고도 혼자 숨어서 울어야 하는. 세상 누구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을 때, 우리는 좌절하고 절망하며 살아갈 기운을 잃고 만다.


글쓰기는 그래서 필요하다. 삶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갖기 위해서.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가?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가? 이 단순한 두 가지 질문만 종이에 적어 봐도 생각이라는 걸 깊이 하게 된다. 때로 눈물이 흐르기도 하고, 때로 가슴을 쥐어뜯기도 한다. 글이란 이런 것이다. 멈추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고개를 들게 한다.


세상 누구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을 때, 아무도 내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을 때, 백지는 오직 나의 이야기에 마음을 열어주는 순결한 존재이며 아름다운 동반자가 된다. 백 마디 말을 허공에 던져 봐야 무슨 소용인가. 돌아서면 허탈하고, 상대방 말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밤새도록 잠을 설쳐야 하는, 복잡하고 가식적인 '말'에 무게를 두는 일. 이제는 그만두어야 한다.


좋은 책을 읽으면 가슴이 묵직해진다. 그 책을 쓴 작가는 '멈추었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진 때문이다.


우리도 그런 글을 써야 한다. 질주하는 사람의 어깨를 가볍게 잡아 잠시 멈추게 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만의 목소리로 인생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글은 채찍이 아니다. 글은 당근도 아니다. 글은 생명이며 삶이다. 베스트셀러? 웃기지 마라! 독서모임 천무를 통해 세상 밖으로 드러나지 못한 '좋은 책'을 소개하고 있다. 이제 우리 작가들은 알게 될 것이다. 팔리는 책에 집착하는 인생이 얼마나 같잖은 일인지.

스크린샷 2022-01-31 오전 9.09.30.png

설 연휴를 보내고 있다. 행복한 사람도 있을 테고 외로운 사람도 많을 테고 가슴이 시린 사람도 없지 않을 터다.


가족, 음식, 행복, 불행, 갈등, 사랑...... 한 편의 글이 자신과 타인에게 '의미'를 전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느린 삶의 쾌락.

자신의 목소리로 살아가는 인생의 가치.

그래서, 글쓰기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책쓰기 수업 명함 신규.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