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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뭐가 달라졌는데?

쓰는 인생에 대하여

by 글장이


눈빛들이 예사롭지 않다. 대놓고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알음으로 눈치로 '박살났던 이은대'를 기억하는 것이다. 다시 일어서지 못할 거라고. 자기네들끼리는 염려 반 흥미 반 내 이야기를 했을 터다.


불과 몇 년만에 멀쩡하다 못해 예전보다 더 좋아진 나를 보면서, 그들의 눈빛은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무슨 일이? 궁금하면서도 차마 물을 수 없는. 그 묘한 분위기.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내는 그런 분위기를 은근히 즐기는 듯했다.


온가족이 모였다. 일 년에 두 번. 명절은 그래서 북새통이다. 사람 그리운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색없이 이 날을 학수고대하신다. 이제는 아내도 도가 터져서 윗사람 노릇 톡톡히 하면서도 빈틈없이 일 챙긴다.


글 쓴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정확히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친척들이 힘들게 입을 뗀다.


글을 쓴다고?
뭐가 좋은데?
뭐가 달라지는데?


명절에 친척들 모인 자리에서 글쓰기에 관한 원초적 물음에 답을 해야 하는 것인가. 365일 얘기를 해도 다 끝내지 못할 저 우주적 질문에 나는 어찌 답을 해야 한단 말인가.


뭐가 좋으냐고? 무엇이 달라지냐고? 나 보면 알 거 아냐. 더 무슨 설명을 할 필요가 있겠냐는 말이지.


쓰는 사람의 인생은 쓰지 않는 사람의 인생과 똑같다. 쓰는 사람의 인생은 쓰지 않는 사람의 인생과 모든 면에서 다르다.


굳이 말하자면 이것이 내 답이다. 말장난 같지만, 이보다 더 정확히 표현할 방법 없다.


일어나는 '사건'은 똑같지만, 견디는 '힘'은 다르다는 것. 이것이 바로 글쓰기 효과다.


힘들고 어려운 일 누구에게나 생긴다. 글쓰기는 그런 사건을 막아주는 마법이 아니다. 똑같은 시련과 고통 마주하더라도 비굴하거나 교만해지지 않도록 바람막이 역할을 해 주는 것이다. 위엄을 잃지 않는 태도. 무릎꿇지 않는 의연함. 목소리 낮출 줄 아는 겸손. 그래서 글쓰기다.


글 쓰는 사람은 모두 의연하고 겸손한가? 이 질문에도 나는 기꺼이 '예스'라 답하고 싶다. 글 쓰는 시늉만 하는 사람, 글 쓰는 삶을 사는 척하는 사람, 교회에 일주일 나가고 하나님이 전부인 것처럼 주절거리는 사람...... 늘 하는 얘기지만, 이런 사람들은 글쓰기가 문제가 아니다.


인생은 달라질 수 있다. 스스로 다르게 만들 수 있다. 자신에게 그럴 만한 힘이 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믿어야 한다. 강력한 신념은 '내 안'에서 비롯된다. 글 쓰는 습관은 자기 신뢰의 출발점이다.


살면서 쓰고, 쓰면서 산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고, 쓰는 대로 살아간다. 무엇이 달라지는 거냐고 묻기 전에 무엇이든 다르게 만들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글쓰기는 그런 믿음을 강하게 뒷받침하여 결국 모든 것을 바꾸는 도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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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불안, 초조, 조급, 두려움.


참 찝찝하고 더러운 기분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감정들.


저런 감정들이 일어날 때마다 글을 쓴다. 한결 덜하다. 그래서 글쓰기다.


뭐가 좋으냐고?


뭐 한두 가지겠어!


지금 행복하십시오!


책쓰기 수업 명함 신규.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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