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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없는 곳에서

더 멋지게 살아라

by 글장이


5년만에 보았다. 훈이는 고등학교 2학년, 유이는 중학생이 된다. 어른이 나서서 가자고 하지 않으면 서로 만날 기회 없는 어린 시절이었다. 이제 다 컸으니 앞으로는 아빠가 바빠도 버스 타고 오라고. 진심인지 치레인지 겉도는 말을 많이도 내뱉았다.


훈이는 근사하게 컸다. 오래 전 홍콩 영화배우였던 유덕화가 떠올랐다. 앞머리를 양갈래로 내렸고, 피부도 뽀얗다. 유이는 어렸을 적 키가 작아 고민이었다는데, 지금은 160 가까이 컸다.


큰아빠랍시고 무엇 하나 제대로 챙겨준 것 없었다. 미안했다. 내 인생 몰락했을 무렵이라 조카들에게까지 마음 쓸 여력 없었다. 문제 일으키고 사고 치지 않으면 다행이다 싶었는데, 여느 아이들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만큼 잘 커주었다.


고등학생과 중학생. 남매지간에 툭탁거리기 여사인데, 둘은 따뜻했다. 유이가 오빠를 잘 따랐다. 툭툭 던지는 농담이야 티격태격이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의지하고 사랑하는 모습 역력했다.


훈이는 고집 세고 성깔 있었는데, 이제는 어른스러웠다. 씨익 웃는 모습이 멋있었다. 이대로만 큰다면, 제법 근사한 어른이 될 것 같았다. 예, 예, 큰아빠. 공손하고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유이는 전교생이 50명도 채 되지 않는 시골 초등학교에 다녔었다. 이제 친구가 많은 중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며 좋아했다. 누가 봐도 세상 착학 소녀의 모습이다. 사랑스럽다. 그래서 안쓰러웠다.


나는 왜 엄마가 없어요?


유이가 어렸을 적 자주 하던 질문이었다. 할머니와 아빠, 그리고 큰아빠인 나조차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하였다.


사촌 동생인 준이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이제 인생이 좀 풀리는가 싶었는데. 아이 둘을 낳고서는 이혼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준이는 그 후로 술을 마셨다. 폭음으로 인해 몸 구석구석 병이 생겼다고. 수 년 전에 시커먼 얼굴로 내게 말했었다. 아이들 생각해서라도 당장 술 끊고 정신 차리라고. 난 그저 형식적인 조언만 해주었을 뿐.


훈이와 유이 데리고 볼링장에 갔다. 훈이는 제법 공 굴릴 줄 알았고, 유이는 처음이라 했다. 가족 모여 볼링 치는데 즐거움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소리 지르고 웃고 떠들고 환호를 질러댔다. 훈이와 유이도 깔깔 넘어갔다. 혹시 옆 레인 손님들이 불쾌해하면 어쩌나 염려했었다. 그들의 실력도 도랑이었고, 웃고 자빠지는 모습 우리랑 다를 바 없었다. 다행이었다.


볼링장을 나오면서 유이가 말한다. 큰아빠, 재미있었어요!


명절 지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훈이와 유이에게 맛난 거 사먹으라며 용돈 쥐어주었다. 자주 놀러와. 나는 또 형식적인 인사를 하고 말았다.


밝게 웃는 두 녀석 가슴에 엄마의 빈 자리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상실의 아픔이 없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인지. 이미 떠난 이를 향한 원망과 분노가 새삼스럽다. 다행이도 준이는 술을 끊었다고 한다.


살 만 하니 조카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인가. 나도 참 한심한 속물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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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와 유이. 누구보다 강하고 멋있게 커라. 엄마가 없다는 환경과 상황이 너희의 삶에 이유나 핑계가 되지 않도록.


아침밥 차려주는 엄마 노릇 해줄 수는 없지만, 너희 인생에 아무도 시비 걸지 못하도록 큰 울타리 되어줄 테니.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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