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원망, 그 작은 그릇에서 벗어나
꽃집 앞에 어린 아이가 서성인다. 한 손에는 동전 몇 푼을 쥐고 있다. 무슨 일이냐고. 꽃을 사려 하는 거냐고. 주인이 묻는다. 아이는 쭈삣거리며 말한다. 일하러 갔다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엄마한테 주려고 하는데, 이 돈으로 꽃을 살 수 있느냐고.
주인은 아이를 물끄러미 본다. 그리고는 동전 몇 개를 받아 달그락거린다. "어떤 꽃을 사고 싶어?"
이번에는 행색이 더 초라한 아이가 식당 앞을 서성거린다. 일하던 아주머니가 묻는다. 무슨 일이냐고. 아이는 대답한다. 이 돈으로 사 먹을 만한 게 있나요? 턱없이 부족하다. 아주머니는 길게 한숨을 내쉰다. 뭘 먹고 싶니? 고기 좋아하니? 아줌마가 고기 좀 해줄께. 거기 앉아라.
폐지를 주워 담아 힘겹게 리어카를 끄는 할아버지 곁에 작은 손녀가 함께 걷다가 문득 멈춘다. 할아버지, 나 피자 먹고 싶어요. 할아버지는 난처하다. 돈이 없다. 할아버지한테 피자는 꽤 비싼 음식이다. 울상을 짓는 손녀를 달래 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길가에 서 있다.
길을 가던 한 청년이 그 모습을 본다. 그리고 잠시 후, 청년은 피자 한 판을 포장해 온다. 할아버지, 이거 받으시고 손녀랑 함께 드세요.
꽃집 주인은 눈물을 훔쳤다. 식당 아주머니도 눈물을 흘렸다. 길 가던 청년도 먹먹해했다.
강의를 듣고 책을 출간했는데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속상했다. 화가 났다. 어디 두고 보자. 속으로 이를 콱 물었다.
강의 시간에 몇 번이나 강조했던 내용인데, 또 엉터리로 글을 쓰며 처음 듣는다는 듯이 질문을 한다. 마치 내 탓이라는 듯 쏘아붙인다. 짜증이 났다. 불쾌했다.
아버지의 고집, 어머니의 잔소리, 아내의 성질머리...... 모두 내 마음에 들지 않아 심란하고 불편했다. 나와 맞지 않는 부분. 고치길 바랐다. 나는 문제 없고, 세상이 문제라 생각했다.
멀리 일하러 갔다가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엄마한테 꽃을 선물하고 싶은데 돈이 없다. 그 작은 아이 손에 예쁜 꽃다발 안겨주는 꽃집 아주머니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아이에게 밥을 차려주는 식당 아주머니의 가슴.
하나 뿐인 손녀딸 피자 하나 사주지 못하는 할아버지 심정 오죽할까. 그 모습 지나치지 못하고 피자를 사서 선물하는 청년. 청년의 손. 청년의 마음.
은대야. 왜 사니?
멋있게 살고 싶다고 그토록 다짐하건만. 조금만 불쾌한 일 생기면 금새 허물어지고 만다. 내공이 부족한 탓일까.
꽃집 아주머니는 한 달에 얼마나 벌까? 식당 아주머니는 서빙을 하며 살아가고. 길 가던 청년은 아무리 봐도 아직 학생이다. 그들은 돈이 남아돌아 마음 따뜻한 것일까?
무엇에 쫓기듯 앞만 보며 살아가는 인생. 먹고 살 만큼 돈도 벌고 사업도 잘 되고 아무 걱정도 없는데. 왜 나는 아직도 마음 헛헛하고 목이 마른 걸까.
생면부지 누군가에게 꽃다발 안겨준 적 있는가. 밥 한 끼 차려준 적 있는가. 피자 한 판 사 준 적 있는가. 내 가슴에도 아직 온기가 남아 있기나 한 것인가.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공터에 앉아 안주도 없이 깡소주 들이키며 세상을 향해 욕을 퍼붓던 시간. 누구 한 사람이라도 내 손을 잡아주길 얼마나 간절히 바랐던가.
망각의 동물이라 하지만, 이리도 간사하게 달라지고 말았나 씁쓸한 생각이 든다.
작은 일에 발끈하며 기어이 내 몫을 챙기려 안간힘 쓰면서 살아가는 작은 인생. 벗어나고 싶다. 좀 더 크게 살 수는 없을까.
훗날 눈 감을 때, 난 하나도 빼앗기지 않았어! 외치는 것이 과연 행복일 수 있을까. 그래도 제법 많은 걸 나눴어. 흐뭇한 표정 지을 수 있다면 다행일 테지.
뭐가 그리 화가 나고 뭐가 그리 분한가.
꽃 한 송이 살 수 있고 밥 한 끼 먹을 만하고 피자 한 판 사먹을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