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을 들여야
글 쓰다가 펜을 집어던진 적 많다. 마음대로 써지지도 않고, 그럴 듯한 문장이라고는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힘들고 괴롭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힘들고 괴롭다는 표현 말고는 도무지 떠오르질 않았다. 어휘가 부족하고 표현력이 모자란다는 자책. 쓰기 싫었고 짜증이 났다.
어쩌다가 한 편의 글을 제법 수월하게 썼다 싶을 때는, A4용지 두 장 분량이 모두 비슷한 내용으로 채워졌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그 말이 그 말 같고, 했던 얘기 또 하고, 메시지도 없고, 푸념과 하소연만 가득했다.
다산 정약용과 신영복 선생의 글을 수도 없이 반복해 읽으면서 나와 다른 점을 알았다. 다산의 글을 읽을 때는 내가 다산이 된 듯했고, 신영복 선생의 책을 읽을 때는 내가 마치 당신이 된 것 같았다. 그들의 글에는 사소한 디테일이 살아 있었다.
12월. 설거지 하다가 손이 어는 줄 알았다. 호기롭게 시작한 설거지를 끝낼 무렵이 되면 어느새 두 손이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동상에 걸려 가렵고 따가웠다.
야! 이것도 설거지라고 한 거냐? 여기 밥풀이 그래도 묻어 있잖아!
같은 방을 쓰는 문신 가득한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얼음짱같은 물에다 그릇을 씻다 보니 제대로 빡빡 문지르지 못한 탓이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좋은 말 한 마디 듣지 못했다.
힘들고 괴롭다는 말 대신 위와 같이 글을 바꿔 적었다. 쓸 거리도 많고 속도 시원했다. 감정을 직접 표현하기보다 상황을 구체적으로 썼다. 한결 나았다. 힘들고 괴롭다는 표현은 나 개인의 감정일 뿐. 구체적인 상황은 팩트였다. 감정보다 팩트가 쓰기 쉬웠다. 읽는 사람의 공감을 끌어내기에도 유리했다.
모든 일에는 정성이 필요하다. 빨리 끝내고 다른 일 해야겠다는 조급함으로 임하면 '나다운 글'을 쓸 수 없다. 건성으로 쓰게 된다. 내용도 듬성듬성하다. '나'는 알고 있지만 '독자'는 모르는 글이 된다. 벽이 생기는 순간 독자는 책을 외면한다.
차분하게 앉아서 한 줄 한 줄 꼼꼼하게 적어 본다. 막힐 때는 내려놓고 잠시 쉬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한 줄을 적는다. 시간 걸린다. 어쩔 수 없다. 공사중인 건물이 무너진 이유가 무엇인가? 인생도 마찬가지. 건너뛰고 대충 하고 서두르면 흔들리고 위태롭다.
글 쓰려는 이들에게 일기를 쓰라고 권한다. 메모하는 습관 가지라고 조언한다. 블로그 포스팅 꾸준히 하라고 말한다. 일기, 메모, 블로그, 모두 '귀찮은' 일이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 굳이 할 필요 없는 일. 이런 일들을 통해 글쓰기 내공이 쌓인다.
작은 습관을 귀찮아하면 글은 빈약해진다. 사람 대하는 거 귀찮아하고, 일하기도 귀찮아하고, 작은 한 마디 귀찮아하면, 인생도 빈약해진다.
잘 보려고 노력하고 제대로 들으려고 애쓰고 반듯하게 행동하려고 정성 쏟아부으면 글도 인생도 풍요로와진다.
무엇이 그리 급한가? 급하게 서둘러서 지금껏 많이도 이루었는가?
생각대로 살았는데 뭔가 부족하다 느낀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경험 부족한 사람의 고집이야말로 경계해야 할 첫 번째 악습이다.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 우직하게 밀어붙이고, 끈기 있게 실천해야 비로소 열매를 맺을 수 있다. 특히 글쓰기는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는 대표적인 분야이다. 배우고 익히고 연습하는 과정을 통해 서서히 달라진다. 대신, 한 번 달라지고 나면 평생 써먹을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건물 무너진 것 보면서 해당 기업 욕 많이 먹더라. 욕 먹을 만하다. 실컷 손가락질했으면 이제 화살표를 스스로에게 겨눠야 한다. 나는? 나는 어떠한가? 나는 조급하지 않은가? 나는 대충하지 않는가? 나는 정성 쏟고 있는가?
오늘 하루를 대하는 마음가짐. 귀찮아하면 빈약해진다. 기꺼이 움직이고, 이왕이면 정성 담아야지. 살 만하면 쓸 만하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