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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끌어당김의 법칙

by 글장이


동전의 양면. 행복과 불행. 밝음과 어둠. 인생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과 같기도 하지만, 지극히 마땅한 규칙을 가진 경기이기도 하다.


앞면이 없으면 뒷면도 없다. 애초부터 불행이란 게 없었다면 행복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터다. 어둠이 없었다면 밝음이란 말조차 생겨나지 않았을 테지.


최근에 좋지 않은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마음 추스리기가 힘들었다. 고민스러웠고, 걱정을 했고, 해결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지치고 힘들었다. 생각은 자꾸만 부정적으로 흘렀고, 그래서 안좋은 일이 더 많이 끌려왔다.


좋은 일이 일어나길 바란다. '좋은 일'이란, 안좋은 일이 있기 때문에 탄생한 개념이다. 끌어당김 법칙의 기본적인 순서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첫째, 안좋은 일이 무엇인지 안다.


둘째, 좋은 일이 무엇인지 알아챈다.


셋째, 좋은 일이 일어난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넷째,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가운데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지는 것을 느낀다.


다섯째, 그 느낌에 주목하고 집중하고 초점을 맞춘다.


인생에는 규칙이 있다고 말했다. 끌어당김 법칙이야말로 예외가 없는 완벽한 인생 룰이다.


안좋은 일이 일어나면, 비로소 내가 진정 바라는 좋은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여기서부터 중요하다. 초점을 '좋은 일'에 맞춰야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안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이미 일어난 안좋을 일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간다. 힘들어하고 괴로워한다. 또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행동은 중요하다. 허나, 그 행동의 발원 동기가 더 중요하다.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부담스럽고 힘들게 행동하는가. 아니면 이미 해결된 것처럼 느끼며 즐거운 마음으로 행동하는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바로 이 차이가 인생을 만든다.


고통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최근에 내가 접한 누군가의 고통. 그것은 감히 넘겨짚지도 못할 정도로 크고 아픈 시련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 고통을 가늠하지 못한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큰 고통에 대해서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다만, 충분히 극복 가능한 작은 고통만으로 쓰러지는 사람의 경우를 짚고자 한다. 내 경우이기도 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혼란을 겪는다. 잔잔한 감정에 파도가 일어나고, 누군가의 한 마디에 흔들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 이야기에 짜증을 일으킨다. 인간의 본능이 부정적 성향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매번 불편한 마음 가지다가는 인생 삐뚤어지고 말 텐데.


좋은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는 건 분명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사람 생각이라는 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이다.


우연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어젯밤 잠들기 전에 저절로 미소가 띄어질 만큼 즐거운 생각을 했었는데, 오늘 아침 골치 아픈 문제 하나가 거짓말처럼 해결되었다.


믿음은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면 기분 좋은 생각의 힘을 한 번 믿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혹시 걱정이나 고민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사람 있다면, 그 문제 시원하게 해결되었을 때의 느낌을 차분히 상상해 보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편안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면, 이제부터 그 느낌에 집중해 보는 거다. 적어도 내 경험상 문제가 해결되거나 실마리를 찾게 될 거라는 확신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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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편안하고 사람들도 행복하고. 매일 웃을 수 있는. 욕심일 수 있겠지만, 그런 세상이면 좋겠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듣기 거북한 소식이 전해지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내야 하고 버텨야 한다. 세상 사건이나 사고를 모두 막을 수는 없겠지만, 내 기분 좋게 만드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은가. 내 아이 어렸을 적 사진만 봐도 웃음이 나는, 그런 방법을 하나쯤 마련해야 한다.


마음 좀 가볍게, 편안하게 가지며 살아야지. 안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좋은 일이 무엇인지 선명히 떠올릴 수 있는 계기'로 삼는다. 안좋을 일이 생길 때마다 행복 하나씩 챙길 수 있도록.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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