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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잠시의 위로로 끝나지 않기를

감사합니다 내 인생

by 글장이


눈물. 낯설었다. 내게도 눈물이 있었던가. 이렇게나 많이. 하루가 멀다하고 오열했다. 세상에 대한 원망, 내 자신을 향한 분노,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 술을 마시고 정신을 잃는 것만이 하루하루 버틸 수 있는 유일한 힘이 되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후로 더 많이 울었다. 상처를 파헤치고 너덜하게 만드는 과정인 것 같아서 '쓰는 행위'를 잔인하다고 정의한 적도 있다.


9년 하고도 9개월이 지났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눈물이 멈췄다.


한두 달 글을 쓰고 치유를 말하는 사람. 돈을 받고 치유를 가르쳐주겠다는 '작가'들. SNS마다 치유라는 말이 물 넘치듯 범람하고, 상처 때문에 아파하는 이들이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몰려드는 모습을 본다.


함부로 치유를 말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자기 치유도 그러할진대, 남의 치유는 더더욱 조심해야지.


상처의 크기와 깊이에 따라, 그리고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치유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았다. 그 시간을 오롯이 견디는 동안 피와 고름이 흐르고 상처는 아물고 눈물은 말라가는 것이다.


치유에 관해서 말하기 전에 상처부터 들여다보아야 한다. 직시할 수 있어야 반창고 붙일 자리를 정확히 찾을 수 있다.


두 눈 크게 뜨고 똑바로 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은 자신을 마주할 때가 가장 힘들고 두려울 테니. 그럼에도 상처가 더 이상 내 삶을 좀먹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시간 내고 노력 기울여야 한다.


놓치지 말아야 할 시간! 두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라도 용기 내어 마주하고 보면, 상처가 아니라 상처라고 여기는 마음이 더 문제였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언어는 인간이 만들어낸 표현의 도구일 뿐. 그래서 모든 감정을 완벽하게 드러낼 만한 단어와 어휘가 없다는 것이 한계다. 이런 한계 때문에 조금 서운하고 실망스러운 감정까지 몽땅 상처라고 부르며 아파했던 것은 아닌지.


머리가 아프면 두통약을 먹는다. 금새 괜찮아진다. 두통약은 두통을 '치유'한 것이 아니라 아픔에 둔감하도록 만들어주는 약일 뿐. 진통제 처방은 일시적 위안일 뿐 근본 치료법이 될 수 없다.


글 쓰는 일도 다르지 않다. 잠시 마음의 평온을 찾거나 일상의 행복으로 초점을 돌릴 수는 있겠지만, 마음 깊이 파고든 가시까지 뽑아낼 수는 없다. 충분한 시간과 공을 들여야만 조금씩 나아질 거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팠다. 그래서 아픈 사람 마음을 안다. 힘들고 괴롭다. 오죽했으면 부모 처자식 두고 세상을 등지려 했을까.


10년 세월 쓰고 나니까 다른 사람이 보였다. 내 아픔과 상처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강의를 시작했다. 가르칠 자격 없었다. 나눔이 목적이었다. 진심 알아주는 사람이 많았다.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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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애환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때로 삶을 접고 싶을 정도로 마음 시린다. 알아주는 이 없고 기댈만한 곳 여의치 않을 때, 그럼에도 살아내야 한다는 처절한 외침으로 버티고 견디고 일어선다.


잠시의 위로가 되지 않기를. 글 쓰는 행위가 삶의 이벤트로 끝나지 않기를. 오늘도, 내일도, 그저 주어진 삶을 담아내며 내 몫이라 감사하게 여길 줄 안다면. 그래. 상처 더 이상 곪지 않을 터다.


훗날 삶을 정리할 즈음에 이르렀을 때, 내 영혼에 남은 흔적들을 어루만지며 참 열심히 살아냈다 미소지을 수 있기를.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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