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옆으로 비껴 서면
볕이 뜨겁고 눈부십니다. 뒷좌석에 앉은 사람이 창문 가림막을 내립니다.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한 사람이 가림막을 내리면 앞뒤로 앉은 사람의 창문도 가려집니다. 도로 올리고 싶어도, 뒤에 앉은 사람이 볕이 싫어서 내렸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냥 가림막을 내린 채로 갑니다. 대구에서 포항까지는 불과 4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으니까요.
열차를 탈 때마다 여행하는 기분입니다. 자리에 앉아 글도 쓰고 책도 읽지만, 오늘처럼 짧은 거리 이동할 때는 그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게 최고인데 말이죠. 밖이 보이지 않으니 답답했습니다. 책을 펼쳐 읽다가 화장실에나 다녀오자 일어섰습니다.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객실 통로에 있는 출입문 창으로 바깥 풍경이 보입니다. 의자도 하나 마련되어 있고요. 털썩 주저앉아 넋을 놓고 창밖을 바라봅니다. 아! 스쳐가는 여름 끝자락의 풍경이 어찌나 아름답고 근사하던지요! 예전에는 이런 맛을 몰랐습니다. 누군가 저한테 풍경이 멋지다고 하면, 별 게 다 멋있다며 핀잔을 주곤 했습니다. 달리는 열차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역시 최고였습니다.
동대구역은 '복합 환승 센터'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신세계 백화점과 나란히 붙어 있고, 고속버스 터미널도 함께 있습니다. 시외로 나갈 일이 있으면, 버스를 타든 열차를 타든 한 곳에서 다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어 편리합니다. 다만, 워낙 넓고 복잡해서 처음 이용하는 사람은 길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꽤 오랫 동안 동대구역을 이용했습니다. 정문 후문 옆문 쪽문 등 구석구석 모르는 곳이 없습니다. 맛있는 어묵을 파는 식당도 알고, 초밥을 맛깔스럽게 포장해주는 곳도 있고, 닭강정 별미도 자주 맛봅니다. 서울이나 경기 쪽으로 올라가는 열차를 이용할 경우 대략 몇 번 승강장을 이용하는지, 반대로 부산이나 창원 등 아래 지방으로 내려갈 때는 또 몇 번 승강장을 이용하는지 훤히 꿰뚫고 있습니다.
7년 동안 동대구역에서 전국 각 지역으로 이동하다 보니, 그 넓은 '복합 환승 센터' 구조를 전부 알게 된 것이죠. 노숙자들 모여 있는 곳도 알고,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군밤과 옥수수를 파는 할머니들 모여 있는 곳도 알 정도입니다.
글을 쓸 때는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기본 재료로 활용합니다. 글감이 된다는 뜻이죠. 우선, 잘 보고 귀기울여 듣고 적극적으로 체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쓰겠다 작정하고 대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구석구석 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뻔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글쓰기는 슬럼프에 빠지고 맙니다. 놀라고 감탄하고 대단하다 느낄수록 쓸 거리가 많아집니다.
끝으로, 한 가지 덧붙이고자 합니다. 글 쓰는 사람은 움직여야 합니다. 책상 앞에 앉아서 머리로만 궁리하지 말고, 세상 속으로 나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창문 가림막이 내려져 있으면 통로로 나갑니다. 동대구역에 갈 일이 있으면, 일찍 도착해서 여기저기 두루 살핍니다. 여행? 별 것 아닙니다. "다른 눈"으로 "구석구석" 살피면서 "이런 것도 있구나" 하면, 그게 바로 최고의 글쓰기 재료입니다.
세상을 보려면 내가 움직여야 합니다. 보이는 것마다 들리는 것마다 못마땅하게 여긴 적 있었습니다. 만사 불만이었고, 세상과 타인을 보며 내 마음 같지 않다 투덜거렸지요. 바꾸려 했습니다. 바뀌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바뀌지 않으면 속상하고 화가 났습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지요.
내가 조금만 옆으로 자리를 옮기면 전혀 다른 세상이 보입니다. 내가 통로로 나가면 창밖을 훤히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이 쪽으로 가면 고속버스 승강장이 있고, 내가 저 쪽으로 가면 군고구마 파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세상이 '어떤 곳'이라는 정의는,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 덕분에 저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조금만 옆으로 비껴 서서 다시 한 번 보십시오. 걱정이나 근심 거리가 생겼다면 한 계단 올라서서 다시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환경이나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저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바닥에서의 삶을 한 번 보고 오시기 바랍니다.
내가 움직이면, 세상은 달라집니다. 글 쓰는 사람은 늘 세상을 천연색으로 볼 수 있고, 또 그렇게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