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는 인생을 위하여
결혼을 앞두고 처음으로 아내의 집을 방문했을 때, 장모님은 두 팔을 벌려 저를 환영해주셨습니다. 지금은 비록 세상을 떠나셨지만, 장모님은 유일한 제 편이었고 응원군이었으며 든든한 빽이기도 했습니다.
요리를 잘 하셨습니다. 장모님이 해주시는 음식은 무엇이든 맛이 좋았습니다. 예의상 그런 것이 아니라, 저는 장모님이 해주시는 밥을 먹을 때마다 늘 두 그릇씩 비웠습니다. 정말로 맛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으로 아내의 집을 방문했던 날, 장모님은 고기국을 끓여주셨는데요. 밥상에 오른 국을 보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커다란 국그릇에 고기와 나물 등 건더기는 수북이 올려져 있는데, 국물은 잘박하게 조금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평생 동안 어머니가 해주시는 국만 먹었거든요. 어머니는 건더기보다 국물을 많이 담아주셨습니다. 그러다가 국이 다 떨어져 갈 때 즈음이면 그제야 건더기를 주셨지요. 말하자면, 국 건더기는 '먹다 남은 음식'인 셈이었습니다.
사위 될 사람이 처음으로 방문했는데 '먹다 남은 음식'을 대접하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서 먹다 남은 국밖에 준비하지 못한 것인가. 내색하지 않고 먹었습니다. 워낙 맛있었기 때문에 국물인지 건더기인지 분간하는 것조차 잊을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아내의 집에서는 국도 젓가락으로 먹었다고 합니다. 귀한 손님일수록 건더기를 많이 쌓아 올려주고, 국물은 그저 맛만 보는 정도로만 주는 것이 예의라 했습니다.
아내가 시집와서 국을 끓이고 담을 때, 제가 곁에서 조언(?)을 했었지요. 우리 집은 국물이 흥건하게 담겨야 제대로 된 국으로 본다고 말이지요. 그 때 아내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물을 흥건하게 담으니까 내가 너무 예의가 없고 정성이 없는 사람 같아."
평생 어머니가 끓여주고 담아주신 국만 먹었습니다. 그러니 국물이 흥건한 국이야말로 제대로 된 국이라 믿었지요. 건더기만 가득한 국은 '남은 음식'이라는 관념이 견고했습니다. 저와 아내는, 국에 대한 가치관을 통일시키느라 꽤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어떤 국이 정의일까요? 국물이 많은 국은 옳고, 그렇지 않은 국은 그릇된 것일까요? 건더기가 많으면 '남은 음식'이고, 국물이 많으면 '귀한 음식'일까요? 국을 먹을 땐 국물을 많이 담아 먹는 것이 정답일까요? 아니면, 건더기를 푸짐하게 담아 먹는 것이 마땅한 방법일까요?
지금 제가 하는 질문이 참 우습지 않습니까? 국물을 많이 먹든 건더기를 많이 먹든, 그것은 개인의 성향 차이이고 무엇이 옳다 그르다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각자가 오랜 시간 경험한 일들이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에, 조금 다른 문화를 보면 '이상하다'고 여기게 되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국물이냐 건더기냐 하는 문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겠습니다만, 대부분의 삶을 이런 시각으로 보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경험한 것이 '정답'이라고 믿는 순간, 타인의 경험은 '오류'가 되고 맙니다. 어렸을 적 저는 짜장면을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누나가 짜장면에다 고추가루를 뿌려 먹는 걸 보고는 배꼽을 잡고 뒹굴며 웃었지요. 실수한 줄 알았거든요. 짜장면에는 고추가루를 절대 뿌리지 말아야 한다고, 제 멋대로 결론을 지었던 겁니다. 짜장면과 고추가루의 조합이 얼마나 기가 막힌지 알기까지는 그 후로 몇 년이나 더 흘러야 했습니다.
'자신의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생각 습관은 '타인의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태도로 이어집니다.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는 것이죠.
이런 분위기에서는 이런 태도여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이럴 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다.
무조건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는 습관도 문제이고, 무조건 타인의 방식을 이상하게 여기는 습관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삶의 방식이 허다합니다. 나와 다른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습관이야말로 내 삶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지요.
수강생들의 글을 읽어 보면, 인생이란 것이 참 기막힐 정도로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부터 시작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얼마나 아팠을까, 시간을 돌려주고 싶다 등등 별 생각이 다 듭니다.
책을 읽고 수강생들의 글을 접하면서, 저는 조금씩 '나와 다른 삶'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싶은 내용도 많지만, 제가 이해를 하든 못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삶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누군가를 그런 삶을 살아냈다는 사실이 중요한 본질이지요.
사고의 확장은 타인의 다른 삶을 보고 듣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내 것이 옳다는 아무런 근거나 뒷받침이 없는 상태에서, 오직 '내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든, 누구든, 좋은 점과 단점을 갖고 있게 마련이니까요.
나에게 친숙하다는 이유로 선(善)이 되고, 나에게 익숙지 않다는 이유로 악(惡)이 되는 세상을 바꾸어야 합니다.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다, 다른 삶이 존재할 수 있다, 내가 틀릴 수 있다, 저 사람 말이 옳을 수 있다, 더 나은 방식이 있을 수 있다, 배울 수 있다, 성장할 수 있다,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을 때, 더 나은 삶을 만날 수 있는 것이지요.
"당신의 생각은 그렇군요. 나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 단순한 두 마디가 관계와 행복을 만든다는 사실,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