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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가을이 되기로 했다

'나'로 살아가는 기쁨

by 글장이


유난히도 가을을 탑니다. 싱숭생숭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쓰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상하게도 가을만 되면, 그러니까 9월부터 12월까지, 저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감싸안으며 '절제'하느라 애를 먹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삶에서 굵직한 사건이나 사고는 전부 가을과 겨울에 걸쳐 일어났습니다. '일어났다'는 표현보다는 '자초했다'가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것도 가을이고, 사업을 벌였다가 실패한 것도 가을과 겨울 사이이고, 집을 떠난 것도 가을이며, 집안에 우환이 생긴 것도 대부분 가을에서 겨울로 이어지는 시기였습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가을만 되면 '큰 일'을 벌이고 싶은 충동에 휩싸입니다. 예를 들면, '한 번 태어나 죽는 인생인데 남자가 승부 한 번 걸어봐야지' 같은 생각이 갑자기 마구 드는 것이죠. 저는 원래 승부사 기질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사업에 목을 매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가을만 되면, 바람이 조금 서늘해지기만 하면, 가슴이 벌렁거려 가만히 있질 못합니다.


요즘은 조금 낫습니다. 떨림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그런 제 자신을 멈추게 하고 쿵쾅거리는 심장을 고요히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입니다. 진정해라 이은대! 이제 그만! 워워! 나대지 마라! 조심조심!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을 걸고 고요한 일상을 지향합니다. 조금은 효과가 있는 듯합니다. 적어도 최근 몇 년간은 아무런 사고(?)도 치지 않았으니까요.


뼛속까지 녹아들었던 돈에 대한 욕심이 아직도 남아 있나 봅니다. 명성과 인기에 연연하는 속물 근성이 여전히 제 안에 살아 꿈틀거리는 모양입니다. 많이 빼내고 정제시켰지만, 그래도 타고난 성향을 완전히 뿌리뽑으려면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한 거겠지요.


어디선가 마음을 흔드는 바람이 불어올 때면 독서와 글쓰기로 관심을 돌립니다. 책 읽을 때에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고요. 집중하기에 딱 좋고, 또 읽고 쓰는 모든 내용을 마음 수양 쪽에 맞추니 한결 견디기가 수월한 셈이죠.


더울 땐 온전히 더위가 되어야 하고, 추울 땐 온전히 추위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근사하지 않습니까? 덥다고 투덜대는 게 아니라 내 자신이 더위와 하나가 되라는 말입니다. 춥다고 바들바들 떨면서 움츠리고만 있을 게 아니라 스스로 눈이 되고 바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모든 것과 하나가 되라는 의미일 테지요. 문장 하나가 정신을 번쩍 들게 하고,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삶을 이끌어줍니다.


계절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물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산을 오를 땐 기꺼이 산이 되고, 꽃을 만날 땐 오롯이 향기가 되고, 강아지와 고양이를 만날 땐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삶을 바라봅니다. 누군가를 만나면, 온전히 그가 되어 생각과 말과 행동을 받아들이는 것이죠. 내가 '그 세상'이 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고 화내고 근심할 일도 없을 겁니다.


"가을을 심하게 탄다"는 말로 변명과 핑계를 대며 살았습니다. 제 인생을 가을 탓으로 돌렸던 과거에 미안한 마음 가득입니다. 가을에 휘둘릴 게 아니라, 온전히 가을이 되어야겠습니다. 제가 가을이 되면, 세상과 인생을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알랭드 보통의 《철학의 위안》을 읽고 있습니다. 김사인의 《시를 어루만지다》도 함께 읽는 중입니다. 가을에 어울리는 책입니다. 온전히 가을이 되기에 딱 좋은 글입니다.


가제 <글은, 삶이다>, 일곱 번째 개인 저서 막바지 퇴고 작업 중입니다. 수강생들한테 강조했던 글쓰기 기본과 태도를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적용하려다 보니 시간이 제법 많이 걸렸습니다.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얼마나 치열한 시간을 보내는가, 이런 생각이 저로 하여금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저에게 '가을이 된다'는 말은 결국 읽기와 쓰기로 연결됩니다. 찬바람 한 줄기에 길잃은 마음으로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인생, 이제 그만 멈춥니다. 저는 가을이 될 테고, 은은한 책을 읽고 다부진 글을 쓰면서 온전한 제 삶을 살아가려 합니다.

가을, 독서, 글쓰기, 가을은 남자의 계절 1.png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요.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도 합니다. 가을은 낙엽과 하늘과 운치의 계절이기도 하고요. 올 해 가을은, 아마도 '가을'로만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책쓰기 수업 명함 신규.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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