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는 시간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거의 10년 동안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그것이 제 사회생활의 시작이었지요. 지금도 중요하고 앞으로의 삶도 중요하지만, 과거 제 삶이 어떠했는가를 짚어 보는 것이야말로 지금과 미래를 바르게 살아가는 근원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처음에 회사생활 시작했을 때, 저한테는 돈이 중요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저 돈만 많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는 집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꽤 열심히 일했습니다. 인정도 받고 승진도 하면서 술술 풀릴 거라 짐작했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돈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매월 정해진 월급을 받는데, 그것만으로는 넉넉히 살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회사에 다닌지 5년쯤 되었을 무렵에 깨달았습니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습니다. 빨리 승진해서 월급을 올리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지요. 그 때만 해도 투잡 쓰리잡 개념조차 없었거든요. 죽기 살기로 회사 일을 하면 그 만큼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 그 뿐이었습니다.
돈을 벌고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했는데, 일을 하면 할수록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저의 꿈과 목표와는 상관없이 '상사의 입맛'에 맞춰 일을 해야만 했거든요. 주관을 갖고 회사의 주인이라는 마인드로 일을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은 허황된 망상처럼 들렸습니다.
감정 소모가 너무 컸습니다. 출근할 때도 마음이 무거웠고, 야근할 때는 짜증이 났고, 퇴근하면 피곤에 지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임신한 아내를 볼 때마다 한숨만 나왔습니다. 이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 내가 과연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는 중에도, 회사에서는 쉴 새 없이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인정과 칭찬, 승진은 커녕 매일 잔소리를 듣고 윗사람 눈치를 봐야 했지요. 물론, 제다 다녔던 회사를 흉보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을 말하는 것이지요. 상사와 동료들, 다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만, 일을 할 때의 합리성이나 분위기 등을 고려했을 때, '힘들었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할 뿐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개인 시간도 없이 죽도록 일만 하는데, 인정도 받지 못하고, 누구나 그 정도는 한다는 말만 들으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출근을 하고, 야근을 하고, 주말도 없이 일하고, 퇴근하면 지쳐 쓰러지고......
저는 그런 제 삶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지요. 도저히 이대로는 못 살겠다. 다 때려치우고 싶다. 회사에서 일하는 만큼만 하면, 어딜 가서 무슨 일을 해도 성공하지 않겠는가. 많은 직장인들이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환멸과 염증을 저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던 겁니다. 결국 저는 사직서를 내고, '나의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자, 여기까지 과정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키워드만 나열하면 이렇게 됩니다. 『돈-생계유지-감정소진-환멸』
저만 그랬던 것일까요? 모르긴 해도, 아마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저와 비슷한 단계를 밟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지금은 회사에 다니면서도 다른 일을 부업으로 할 수 있지만, 그 때만 해도 본업 외에 다른 일을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거든요. 아무튼 저는, 점점 '불행한 삶'으로 추락하고 있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사회생활 시작하면서 돈에 대한 욕망을 갖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요? 아니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 것이 잘못된 것일까요? 직장 상사와 동료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감정을 소모한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을까요? 이 모든 것에 환멸과 염증을 느껴 회사를 때려치운 것이 잘못된 것일까요?
생각 끝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모든 과정 중에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지요. 매 순간 힘들고 어려웠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만, 제가 행복하지 않았다고 해서 과정이 불행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중요한 것은, 환멸 그 다음입니다.
영업도 해 보고 사업도 해 보았습니다. 직장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좋은 일만 생겼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저는 여전히 사람을 상대해야 했고, 그들의 입맛을 챙겨야 했으며,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도망과 회피'는 제 인생을 전혀 바꾸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달라진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저는 지금 글쓰기/책쓰기 수업을 진행하는 강사로, 또 작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 자체에서 보람을 느낍니다. 이 말은, 저의 글과 말로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사실에 만족한다는 의미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잘하는 일을 해야 한다, 뭐 이런 말 자주 들어 봤습니다. 의문입니다. 좋아하는 일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잘하는 일은 어떻게 찾아야 합니까? 전부 다 해 봐야 아는 겁니다. 우리에게 언제 한 번이라도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을 찾을 기회와 여유가 주어진 적 있었습니까? 현실적으로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어떤 일이든 일단 시작하게 되면, 그 일에 집중하고 파고들어야 합니다. 몸은 회사에 있는데 마음은 딴 곳에 있었지요. 그래서 힘들었던 겁니다. 직장생활을 열심히 한 것이 아니라, 열심히 한다고 생각만 했을 뿐이지요. 그 때 담당했던 업무 중에 지금 생각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아마도 저는 겉보기에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환멸' 다음은 '직시'입니다. 뭔가 삐걱거리고 잘 돌아가지 않는다 생각되면, 일단 멈춰야 합니다. 고요한 시간을 갖고,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짚어 보아야 한다는 말이지요. 저는 그런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계속 분주하고 조급하게 우왕좌왕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감옥이라는 곳에 들어가서야 '억지로' 멈추게 되었지요.
참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멈출 수 있었으니까요.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으니까요. 무엇이 문제인지 짚어 볼 기회가 있었으니까 말이죠.
지금을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이 '어떻게?'라고 묻습니다. 방법, 비법, 묘법, 지름길 등을 찾는 것이죠.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지금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가?"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이고,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질문이며,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질문입니다. 모든 변화와 성장은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문제를 제대로 찾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막연하게 그럭저럭 살고 있다는 식으로 회피하지 말고, 당면한 문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자신을 직시하고 문제를 파악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저는 세상이 정한 기준대로 살았습니다. 대학 졸업하고 회사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빠듯하지만 그럭저럭 살아가는 인생. 이 틀에다가 제 삶을 구겨 넣었으니 번듯하게 넥타이를 매고서도 마음은 늘 공허했던 것이지요.
다시 강조합니다. 멈추어야 합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직시하고 솔직해져야 합니다. 하루면 될까요? 일주일이면 될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일 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빨리 문제를 찾아야 한다는 조급증 내려놓고, 느긋한 마음으로 매일 5분씩이라도 꾸준히 멈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독서와 글쓰기를 언급해야겠네요. 멈추는 시간에 가장 알맞은 도구는 독서와 글쓰기입니다. 책을 읽으면 문제를 찾을 수 있고, 글을 쓰면 자신과 마주할 수 있지요. 도구는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독서와 글쓰기는 저의 개인적인 경험일 뿐입니다. 혹시 다른 어떤 도구가 있다면 그것으로 멈추어도 상관없습니다.
비가 내립니다. 비가 내릴 땐 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삶이지요.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