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메시지로 바꾸는 필터링 기술
에세이를 쓰다 보면 고민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너무 다 보여주면 창피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죄다 감추면 가식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많은 초보작가가 '진솔함'을 '모든 사생활을 다 까발리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하지만 독자가 에세이에서 기대하는 것은 작가의 수치스러운 과거가 아니라 그 과거를 어떻게 치유하고 어떻게 성장해왔는가 하는 치유의 과정이죠. 독자의 공감을 얻으면서도 작가 자신과 주변을 지키는 사생활 공개의 3대 원칙을 정리해 봅니다.
상처를 상처로만 드러낼 것인가. 아니면, 메시지로 전환하여 작가 자신과 독자들에게 도움 되는 무언가로 전환할 것인가. 상처를 메시지로 바꾸는 필터링 기술을 익히면, 더 이상 공개할까 말까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첫째, '상처'가 아닌 '흉터'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 피가 흐르는 고통(상처)을 그대로 쓰는 것은 '배설'입니다. 고통이 지나가고 아문 뒤 남은 '흉터'를 보여줄 때 비로소 '통찰'이 됩니다.
그 일을 떠올렸을 때 감정적으로 요동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때, 그때가 비로소 원고에 담을 적기입니다. 10년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는데도 여전히 눈물이 쏟아질 때가 있습니다. 시간이 흘렀다 하여 다 치유된 것은 아닙니다.
억지로 묻어둔 채 살아왔다면, 아직은 글로 쓰기에 이른 감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반복해서 그때를 떠올리며 상처와 정면으로 맞서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나는 충분히 상처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지요.
둘째, '사건'보다 '성찰'의 비중을 높여야 합니다. 누가 나에게 무슨 잘못을 했는지(사건)를 나열하는 것은 폭로에 불과합니다. 그 사건을 통해 내가 무엇을 배웠고 어떻게 변화했는지(성찰)에 집중해야 하는 거지요.
사건 자체는 사생활이지만, 그를 통한 성찰은 '보편적 가치'가 되어 독자에게 전달됩니다. 모든 경험에는 배움과 깨달음이 있게 마련입니다. 사건 자체만 떠올리면 계속 화가 나거나 속이 상할 따름이지만, 그 사건을 통해 내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었는가 살펴보면 충분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간 존재의 본질은 성장과 확장입니다. 상처와 아픔 때문에 쪼그라드는 게 아니라, 그 모든 경험을 통해 더 나은 내가 되는 과정이 곧 인생이지요. 상처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픔을 아픔으로만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은 성장과 확장에 반하는 것이겠지요.
셋째, 타인의 권리는 나의 것이 아니란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나의 진솔함을 위해 타인의 치부를 드러낼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내 상처와 아픔을 쓴다는 미명하에 타인의 마음에 또 한 번 상처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주변인이 등장한다면 반드시 가명을 쓰거나, 특징을 재조합하여 '익명성'을 보장해야 마땅합니다. "이건 내 이야기니까 괜찮아"라는 생각은 위험한 오만입니다.
나의 글 나의 책을 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 가슴에 못을 박아서는 곤란하겠지요. '나'는 최대한 솔직하게 드러내야 하지만, '그들'은 최대한 감춰주어야 합니다.
단순 폭로는 작가의 감정 해소와 배설을 목적으로 하지만, 진솔한 글은 독자의 공감과 치유를 목적으로 합니다. 단순 TMI는 자극적인 사실만 나열하게 되지만, 진솔한 글은 취약함을 통한 메시지 전달에 충실합니다. 그저 사건 나열만 하는 글을 읽다 보면 "어쩌라고?"라는 생각이 많이 들지만, 진솔한 글을 읽다 보면 "나도 그랬는데"라는 위로를 받습니다.
독자는 작가의 비밀이 궁금한 게 아니라, 작가의 진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궁금한 겁니다. 경계선 위에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이야기가 단순한 가십이 될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문장이 될지는 오직 '절제'에 달려 있습니다.
에세이를 쓰면서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 아닐까 고민했던 소재가 있다면, 오늘 포스팅을 참고하여 용기 한 번 내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독자에게 울림을 줄 '보석'인지, 아니면 조금 더 묵혀야 할 '상처'인지, 이제는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11권의 책을 출간하면서, 제 모든 과거 상처와 아픔을 최대한 드러냈습니다. 창피하기도 했고, 아프기도 했고, 괴롭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 상처와 아픔의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위로와 용기와 힘을 줄 수 있었다는 사실 덕분에 지금은 가볍고 행복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요약 독서법 <기본&심화 과정> : 2/7(토) 오후 1시~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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