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하고 고요한 마음
대구 매천시장 상인들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립니다. 명절 대목이라 더 우렁찬 듯했습니다. 태풍 때문에 물가가 많이 올랐네요. 주먹 만한 문어가 10만원을 훌쩍 넘고, 생물오징어는 찾아 보기조차 힘듭니다. 감 3개 만원이라 하니, 제 평생 가장 비싼 감을 먹게 생겼습니다.
바닥에는 물이 질펀합니다. 과일, 채소 등을 파는 쪽도 만만치않지만, 특히 수산 시장은 볼 거리가 많습니다.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구입했지요. 조기, 문어, 가자미, 오징어, 동태포, 돔배기 등 매번 제사 때마다 상에 올리는 생선류는 동일합니다.
아버지는 생선 한 마리를 살 때마다 상인과 입씨름을 합니다. "너무 비싸다! 3천 원만 깎아주소!" 여든 노인이 고집을 부리면, 상인들은 못 이기는 척 그 자리에서 시원하게 값을 깎아줍니다. "그리 하이소! 대신 이것도 좀 사가지고 가이소."
그렇게 잔뜩 장을 봐서 오면, 집에서 기다리던 어머니는 비닐 봉지를 하나하나 열면서 잔소리를 시작하십니다. 왜 이렇게 비싼 걸 샀는냐, 이건 또 뭣하러 샀느냐, 조기를 잘못 샀네, 오징어는 중국산이네...... 그럼 또 아버지는 맞받아 소리를 버럭 지릅니다. "내가 다 알아서 샀는데 뭘 그리 잔소리야!"
예전에는 아버지가 시장 상인들과 입씨름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고작 몇천 원 깎으려고 온갖 얘기를 주고 받는 모습이 짜증나서, 그냥 부르는 대로 값을 지불하곤 했었지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말다툼을 하시는 것도 듣기 싫었습니다. 별 것도 아닌 일로 잔소리를 하는 어머니나, 그걸 또 곱게 받아주지 못하는 아버지. 두 분 다 싫었습니다. 좀 조용히 살 수 없을까 혼자서 분을 삭힐 때가 많았지요.
고생 좀 하고 나이 좀 먹고, 글 쓰고 책 읽으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짜증을 내고 못마땅해했던 그 모든 모습들이, 그저 사람 살아가는 모양새일 뿐이란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지요.
재래시장에서 물건값을 깎으며 실랑이를 벌이는 것은 서민들의 일상 풍경일 뿐입니다. 서로 멱살을 잡고 물고 뜯고 싸우는 게 아니라, 밀고 당기는 삶의 풍경입니다. 부르는 대로 값을 지불해도 우리 형편에 큰 문제 생기는 것 아니고, 상인 입장에서도 2~3천 원 깎아준다 해서 크게 손해 볼 일도 아니지요. 깎는 재미라는 것도 있고, 한 푼이라도 더 이윤 남기는 재미도 있는 법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어머니 잔소리도, 아버지 맞불도, 노부부의 '싸움'이 아닙니다. 그렇게 서로 툭탁거리다가도 금새 돌아서면 챙기기 바쁩니다.
"떡 좀 주까요?"
"그래. 떡 좀 묵자."
"꿀물 좀 타주까요?"
"그래, 꿀물 좋지."
조금 전까지 목소리 높이며 싸우던 사람들 맞나 싶을 정도로, 소파에 나란히 앉아 주거니 받거니 맛난 걸 드십니다. 날 세웠던 제가 무색해질 지경이지요.
세상과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때가 있습니다. 모든 걸 다 제 기준으로만 해석하면서,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속상해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가만히 보고 듣습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그저 지켜봅니다.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냥 보고 듣습니다.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들어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 안으로 가져올 필요도 없고,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내가 하는 일에 연결시킬 필요도 없습니다. 편안하고 고요한 감정. 그런 상태로 세상을, 사람을 보고 듣습니다. 글 쓰는 삶을 만나게 되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명절 연휴가 시작됩니다. 사람도 마주할 테고 세상도 보게 되겠지요. 그저 바라보고, 그냥 듣습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살아가는 모습이니까요.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