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설명하면 읽는 사람은 느끼지 못합니다
글을 써 본 경험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한 편의 글을 쓸 때마다 모든 걸 다 설명하려 드는 경향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옷 입고, 신발 끈 묶고 현관문 나서는 과정을 하나하나 나열하는 식이죠.
작가는 읽는 사람을 배려해서 자세히 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런 나열은 읽는 사람 입장에서 지루한 글일 뿐입니다. 아무 의미 없는 글을 기꺼운 마음으로 읽는 독자는 없을 테니까요.
과거 저도 앞뒤 맥락을 전부 설명했습니다. 글이 길어지기만 하고,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마지막에 가서 아주 조금 전하는 게 전부였지요. 제 글을 포함해서 수많은 글을 읽어 본 결과, 뻔한 과정을 다 써놓은 글은 하나같이 지루했고, 과감하게 건너뛴 글이 훨씬 속도감도 있고 와닿았습니다.
독자가 잘 모르는 내용에 대해서는, 독자가 꼭 알아야만 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친절하게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허나, 누구나 뻔히 다 아는 내용이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내용을 주절주절 다 쓰는 것은 독자에게 아무 의미도 가치도 전하질 못합니다.
"나는 화가 났고, 그래서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이유와 결과를 다 써버리면 납작한 글이 됩니다. 읽는 사람이 그 사이의 감정을 스스로 채울 기회를 빼앗기 때문입니다. 뻔한 내용이 가득한 문장은 읽기도 불편하고, 정작 글 쓴 사람이 강조하고 싶은 핵심이 묻혀버립니다.
영화에서 장면과 장면 사이를 확 건너뛰어 속도를 내는 것처럼, 글에서도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은 과감히 빼고 핵심 장면으로 바로 넘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첫째, 누구나 알 만한 중간 과정을 빼버립니다. "나는 노트북을 켜고 워드를 실행한 뒤 하얀 화면을 뚫어지게 보다가 마침내 첫 문장을 썼다" 이렇게 쓰지 않습니다.
"책상 앞에 앉은 지 30분만에 첫 문장을 썼다" 이 한 문장이면 충분합니다. 과정을 보여주지 않아도 읽는 사람은 그 사이의 수고를 충분히 짐작합니다. 빼는 순간 글에 리듬이 생깁니다.
둘째, 결과부터 보여줘서 궁금하게 만듭니다. 이유를 길게 설명하기보다, 그 이유 때문에 벌어진 장면으로 바로 데려갑니다.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 지각했다"가 아닙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팀장과 팀원들이 회의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읽는 사람은 빠진 "왜?"를 찾기 위해 더 집중해서 읽게 됩니다.
셋째, 감정 대신 몸의 반응만 남깁니다.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났다"라고 쓰면 설명하는 문장이 됩니다.
"그가 말을 멈췄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을 수 없었다. 이제 끝인가. 눈물이 툭 하고 떨어졌다" 슬프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읽는 사람이 슬픔을 직접 느낄 수 있습니다. 감정 단어의 자리를 읽는 사람 감각이 채우게 하는 겁니다.
넷째, 문장과 문장 사이에 빈 공간을 둡니다. "~해서, ~하기 때문에"와 같은 이음말을 줄이고, 문장을 짧게 끊어서 놓습니다. 문장 사이 여백이 넓어질수록 글의 긴장이 올라갑니다. 글 쓴 사람이 다 말하지 않은 그 여백에서 읽는 사람은 자기 경험을 겹쳐놓으며 글과 대화하기 시작합니다.
뻔한 걸 빼면 뭐가 달라질까요? 우선, 글이 빨라집니다. 필요 없는 설명이 빠진 글은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갑니다. 읽는 사람은 지루할 틈 없이 핵심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짧고 세게 치는 글이 끝까지 읽히는 글입니다.
또한, 읽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글이 커집니다. 글 쓴 사람이 모든 걸 말하지 않을 때, 읽는 사람은 빈 곳을 자기 상상으로 채웁니다. 스스로 찾아낸 뜻은 떠먹여준 지식보다 훨씬 오래 남습니다. 여백 있는 글은 읽고 난 뒤에도 계속 머릿속을 맴돕니다.
아울러, 하고 싶은 말이 또렷해집니다. 주변의 잡소리를 걷어내면 핵심이 저절로 드러납니다. 뻔한 이야기를 빼고 남은 딱 하나의 문장이 온갖 꾸밈말보다 더 강하게 읽는 사람에게 꽂힙니다.
글쓰기의 진짜 실력은 지우는 데 있습니다. 뭘 써야 하는지 아는 것보다, 뭘 빼야 하는지 아는 게 더 어렵고 더 높은 수준입니다. 읽는 사람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뻔한 부분은 과감히 빼도 됩니다. 글 쓴 사람이 문장을 지울수록, 읽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더 큰 세계가 지어집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