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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면 맑아지고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by 글장이


살면서 뭔가 깨닫거나 통찰한 때를 가만히 돌이켜보면, 대부분 침묵 덕분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혼잡과 소란에서 벗어나면, 자연과 내 안을 비로소 살필 수 있는 것이죠.


맨 처음 감옥에 들어갔을 때, 갑작스러운 정적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견디기 힘들었지요. 뭐라도 말을 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는데,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시끄럽게 떠들지 말라는 규칙도 있었지만, 모두가 자신의 처지를 직시하느라 입을 굳게 다문 탓이었습니다.


어색하고 불편한 침묵이 계속되었습니다. 점점 편안해졌지요. 시간이 갈수록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깥 세상에서 줄곧 해오던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그토록 깊게 했던 적이 이전에는 없었거든요.


사업에 실패하고 감옥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그 날까지, 아버지는 제게 한 마디도 건네지 않았습니다. 몸 조심하라는 말씀도, 밥 잘 챙겨먹으라는 말씀도, 어떻게든 견디라는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 없었다는 이유로 마음 상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크신 침묵' 덕분에 저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입에 발린 말이 제게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버지는 이미 알고 계셨던 겁니다.


집으로 돌아온 첫 날, 아버지는 제게 딱 한 마디 해주셨습니다.

"앞길이 구만리다. 다시 시작해라."


말이 너무 많습니다. 무모하고 쓸데없는 말이 차고 넘칩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입을 좀 다물어야 합니다.


직접 만나 대면했을 때에도 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고, 전화로 이야기할 때도 툭툭 내뱉듯이 책임지지 못할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오픈채팅방에서도 아무 생각없이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말을 쉽게 던지곤 합니다.


자신이 무심코 던진 말에 상처받은 사람이 생기면, 그 때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게 무슨 상처 받을 얘기야?"


그렇습니다. 자신은 모른다는 뜻이죠. 자기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 누군가의 가슴을 찌른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죠. 이 얼마나 무섭고 날카로운 세상입니까.


제 경험을 토대로 말씀드리자면,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반드시 몇 배가 되어 다시 돌려받게 되어 있습니다. 욕을 하면 욕을 돌려받고, 악담을 하면 악담을 돌려받고, 뒷담화를 하면 뒷담화를 돌려받게 됩니다.


그렇게까지 말을 조심하면서 살아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 있는데요. 네, 맞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을 조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말이 전부입니다. 말 때문에 상처받고, 말 덕분에 다시 살고, 말 때문에 죽기도 합니다. 한 마디 말이 가진 위력은 엄청납니다. 신중해야 합니다.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힘든 시간을 겪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랬더니, 블로그 댓글과 개인 문자 혹은 카카오톡과 이메일로 많은 수강생들이 안부와 염려와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저도 잘 압니다. 그 중에는 인사치레도 있고, 겉만 뺀지르르한 정치도 있다는 사실을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의 한 마디 한 마디 덕분에 제가 금세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변한 건 없습니다. 단지, 한 마디의 말을 전해들었을 뿐입니다. 한 마디의 말로 상처를 받아 사는 게 왜 이런가 허탈하고 공허한 시간 보냈는데, 결국 한 마디의 말로 다시 힘을 내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죠.


'앙갚음'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말'에 가장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좋은 말은 반드시 좋은 말로 앙갚음을 하고, 나쁜 말은 예외없이 나쁜 말로 앙갚음을 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말을 소홀히 여기는 이유는, 그 앙갚음이 당장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쁜 말을 하면 내일 당장 그 책임을 져야 한다, 만약 이렇다면 모두가 말을 조심할 겁니다. 하지만, 그 사이 시간이 흐르기 때문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저도 말을 거칠게 하고, 다른 사람한테 말로 상처주면서 살았습니다. 제 인생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든 것을 다 잃었지요. 말이 아니라 다른 이유 같습니까? 아닙니다. 말 때문입니다. 말을 함부로 했기 때문입니다. 제 입에서 나오는 말이 곱고, 또 누군가를 위해주는 말만 했더라면, 아마 그토록 참혹하게 무너지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입니다. 자신은 필요한 말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를 위하는 마음으로 말했다고 자신합니다. 말을 잘했다고 믿습니다. 글쎄요. 상대도 그렇게 받아들일까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침묵입니다. 하루 동안 내뱉는 말의 절반만 줄인다면, 인생은 지금보다 두 배 이상 좋아질 거라고 확신합니다. 밖으로 새어나가는 에너지를 내 안에서 응축해 진정 해야 할 일에 쏟아 부을 수 있으니 가히 폭발적이라 할 수 있지요.


"고요하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비로소 볼 수 있다."


성철 스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알아차리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소란스러운 세상 탓에 마음이 혼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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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다물고 귀를 열면, 두 가지 소리가 들립니다. 하하는 자연의 소리이고요. 또 하나는 내 마음의 소리입니다. 이 가을, 바람과 풀벌레와 나뭇가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마음이 고요하고 맑아집니다.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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