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과 경청
열차나 고속버스를 이용해 전국 각 지역으로 강의를 다녔습니다. 최근 2년간은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 강의 위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만, 그 전에는 한 달 평균 5~7회 지방으로 출장을 다녔지요.
열차나 고속버스를 타면,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는 승객이 꼭 있습니다. 큰 목소리로 통화를 하든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든 간에 주변 승객들에게 방해가 되는 것은 똑같습니다. 혹시라도 통화할 일이 있으면, 작은 목소리로 짧게 끝내거나 객차 사이 통로에서 통화해야 한다는 사실 정도는 세 살 먹은 애도 다 아는 기본 예절입니다. 아직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혀를 찰 일이지요.
노트북으로 글을 쓰거나 조용히 책 읽으며 '여행'을 즐기고 싶은 저 같은 사람한테는, 그 통화 소리가 상당히 거슬리고 짜증납니다. 주의를 주기도 하고, 부탁을 하기도 하고, 사정을 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합니다. 별별 방법을 다 써 보았지만, 열차나 고속버스에서 통화하는 사람은 항상 있었습니다.
저 혼자만의 힘으로 그 많은 예의 없는 사람을 '통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지요.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열차나 고속버스를 탈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뭔가 대책이 필요했습니다.
노트북을 덮습니다. 책을 내려놓습니다. 그러고나서, 그들의 통화에 귀를 기울입니다. 혹시라도 내가 글을 쓸 때 활용할 만한 소재는 없을까. 혹시 내가 누군가의 통화하는 모습을 글로 쓰게 된다면 묘사할 만한 뭔가가 없을까. 이런 생각으로 그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죠.
"걔가 갑자기 웃음을 팍 터트리는 거야."
"아휴, 우리 시어머니는 맨날 옷 타령이야."
"정말? 그래서? 세상에! 어떻게 참았어?"
"우리 신랑이 꽃을 사왔는데, 글쎄 전부 다 시들었지 뭐야."
대부분 쓸데없는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진지합니다. 걱정도 있고 슬픔도 있고 기쁨도 있고 행복도 있습니다. 타인의 통화, 그 안에는 우리네 삶이 담겨 있었던 거지요.
글 쓰는 사람은 평소 두 가지를 실천해야 합니다. 첫째, 관찰입니다. 둘째, 경청이지요. 잘 보고 잘 들으면 잘 쓸 수 있습니다. 하루를 건성으로 보내면, 책상 앞에 앉아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썩 괜찮은 글을 쓰기가 힘듭니다. 책에서 그럴 듯한 문장을 베껴와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도 좋겠지만, 세상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에서 글감 얻는 것이 살아있는 글을 쓰기에 더 좋습니다.
남의 통화를 엿듣는 것이 뭐 그리 낭만적인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통화를 하지 말아야 할 곳에서 통화를 하고 있으니 좀 엿들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전화 끊으라고 소리를 지르고 얼굴 붉혀가며 싸우는 것보다는 엿들으며 글감 찾는 것이 훨씬 바람직한 방법이겠지요.
관찰하는 습관이 생깁니다. 경청하는 습관도 생깁니다. 무엇보다, 주의를 기울이는 습관 덕분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도 들리기 시작합니다. 하루의 밀도를 높여 더욱 풍요로운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죠.
남의 말을 엿듣는 건 나쁜 일이라 하지만, 공공장소에서 예의없이 통화하는 사람들을 글감으로 활용하는 것은 '세상 가장 아름다운 도청'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글 쓰는 사람의 특권입니다. 작가는, 쓰레기 더미에서도 글감을 찾을 수 있고, 자신을 험담하는 이들에 대해서도 글을 쓸 수 있으며, 지루하기 짝이 없는 모임도 소재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쓸 수 있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글 쓰는 사람이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동력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