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유창한 말솜씨가 좋은 강의를 만들지 못하는가
강사를 꿈꾸는 분들이 흔히 하는 오해가 있습니다. 말을 잘해야 강의를 잘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스피치 학원을 먼저 찾고, 발성과 발음을 교정하고, 유려한 말솜씨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쏟습니다.
물론 말을 잘하는 게 강의에 도움이 되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말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강의를 잘하는 건 아니라는 거지요. 말은 어눌한데 강의는 기가 막히게 잘하는 분들도 많고, 말은 청산유수처럼 쏟아내는데 강의 들어보면 정작 남는 게 없다 싶은 분들도 꽤 많습니다.
이런 차이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10년 넘게 강의하고, 수많은 강사들을 지켜보면서 내린 결론이 있습니다. 말 잘하는 강사와 강의 잘하는 강사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는 딱 하나입니다. 시선의 방향입니다.
말 잘하는 강사는 시선이 자기를 향해 있고, 강의 잘하는 강사는 시선이 수강생을 향해 있습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어떤 뜻인지, 그리고 이 차이가 왜 그렇게 큰 결과를 만드는지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말 잘하는 강사의 시선이 자기를 향해 있다는 말은 이런 뜻입니다. 강의를 준비할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내가 어떻게 보일까,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까, 내가 이 부분을 어떻게 멋있게 표현할까, 에 머물러 있습니다.
강단에 서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말이 유창하게 나오고 있는지, 내 표현이 세련됐는지, 내가 준비한 내용이 빠짐없이 전달되고 있는지에 신경이 쏠립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수강생의 눈빛이 흐려지고 있어도 강사는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수강생이 이 부분에서 혼란스러워하는지, 이 이야기가 지루한지, 이 비유가 와 닿지 않는지. 강사의 관심이 자기 말솜씨에 있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수강생의 반응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말은 매끄럽게 흘러가는데 강의는 겉도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매끄러움과 가 닿음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반면 강의 잘하는 강사의 시선은 다릅니다. 준비할 때부터 이 주제가 수강생에게 왜 필요한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마음이 들까, 어디서 걸릴까, 어디서 무릎을 칠까를 먼저 생각합니다.
강단에 서서도 계속 수강생을 읽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지, 눈이 흐려지는지, 표정이 바뀌는지. 그 반응을 보면서 속도를 바꾸고, 사례를 덧붙이고, 때로는 준비한 내용을 과감히 건너뜁니다. 말은 조금 투박해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이야기가 수강생에게 제대로 가 닿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의가 끝나면 수강생은 말재주에 감탄하는 게 아니라, 내 이야기였다고 느낍니다. 바로 그 느낌이 강의의 힘입니다.
이 차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말 잘하는 강사는 자기가 주인공이고, 강의 잘하는 강사는 수강생이 주인공입니다. 말 잘하는 강사의 무대에서 빛나는 건 강사 자신이고, 강의 잘하는 강사의 무대에서 빛나는 건 수강생입니다.
그래서 말 잘하는 강사의 강의를 들으면 저 강사 정말 말 잘하네, 라는 감상이 남고, 강의 잘하는 강사의 강의를 들으면 내가 뭔가 해봐야겠다, 라는 마음이 남습니다. 어느 쪽이 좋은 강의인지는 분명합니다.
그럼 이 시선의 방향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태도의 문제이긴 하지만, 훈련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몇 가지 구체적인 방법을 공유하겠습니다.
먼저 강의안을 쓸 때 첫 문장을 수강생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는 겁니다. 이 강의를 들을 사람은 누구인가. 지금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가. 이 강의에서 무엇을 얻어 가고 싶을까. 이 세 질문에 답을 적어놓고 강의안을 쓰기 시작합니다. 강의안이 완성된 뒤에도 이 세 답변을 다시 읽어보면서, 내가 만든 강의가 정말 이 사람에게 닿는지 점검합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강의안의 방향 자체가 바뀝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 중심의 강의에서, 수강생이 듣고 싶은 말 중심의 강의로 옮겨가게 됩니다.
다음으로, 강의할 때 강의실 뒤쪽 사람의 표정을 읽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앞자리 수강생은 대개 반응이 좋습니다. 그래서 앞자리만 보면서 강의하면 자기도 모르게 이 강의가 잘 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강의의 실제 온도는 뒷자리에서 측정됩니다. 뒷자리 사람의 눈빛이 살아있으면 그 강의는 진짜 잘되고 있는 겁니다. 뒷자리 수강생의 눈빛이 흐려지면 강사가 무언가를 바꿔야 한다는 신호입니다. 이 습관이 들면 강의 중에도 계속 수강생 쪽으로 시선을 두게 되고, 자연스럽게 반응을 읽는 감각이 자랍니다. 뒷자리 '수강생들만' 챙기란 뜻이 아닙니다. 뒷자리 '수강생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끝으로, 강의가 끝난 뒤의 자기 점검을 바꿔야 합니다. 많은 강사가 강의 후에 이런 질문을 합니다. 내가 오늘 말을 잘했나. 긴장하지 않고 잘 전달했나. 준비한 내용을 빠짐없이 다루었나. 이 질문들은 전부 시선이 자기를 향한 질문입니다.
질문을 이렇게 바꿔야 합니다. 오늘 수강생이 무엇을 얻어 갔을까. 어느 지점에서 수강생의 표정이 밝아졌을까. 어느 지점에서 흐려졌을까. 이 강의 뒤로 수강생이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 질문이 바뀌면 다음 강의의 준비 방향이 바뀌고, 시간이 쌓이면 강의 자체가 달라집니다.
말 잘하는 강사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말솜씨는 강의의 훌륭한 도구입니다. 다만 말솜씨가 목적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죠. 말솜씨는 수강생에게 이야기를 잘 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가 강의의 목적은 아닙니다.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면 아무리 세련된 강의여도 수강생에게는 공허하게 남습니다.
강의를 잘한다는 것은 말솜씨의 문제가 아니라 시선의 문제입니다. 내 시선이 어디를 향해 있는가. 나를 향해 있는가, 수강생을 향해 있는가. 이 한 가지가 강의의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말 잘하는 강사가 되는 것보다, 수강생을 잘 읽는 강사가 되는 것. 이게 강의 잘하는 강사가 되는 길입니다.
말솜씨는 시간이 지나면 따라올 수도 있고, 어느 정도에서 멈춰도 괜찮습니다. 수강생을 향한 시선은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평생 생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강생을 향한 시선이 있는 강사는, 말솜씨가 평범해도 오래 사랑받는 강사가 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