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만족, 그리고 행복
밥상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얼마나 간절했는지 모릅니다. 양반다리로 앉아 허리와 머리를 바닥에 처박고 글을 썼습니다. 잠시 후에 몸을 곧추세우면 피가 역류해 머리가 핑 돌았지요. 바른 자세로 앉아 글을 쓸 수만 있다면, 하룻밤에 책 한 권도 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골라 읽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책 한 권 신청하면 일주일 뒤에야 받아 볼 수 있었고, 2주만 지나면 다시 반납을 해야 했습니다. 창살 사이로 전해지는 책을 품에 안으며 기뻐했지요. 서점에 가서 휘휘 돌면서 마음껏 책을 골라 구입하고 실컷 읽을 수만 있다면...... 평생 책만 읽으며 살고 싶었습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궁금한 점이 많았습니다. 난생 처음 글을 쓰다 보니 모르는 것 투성이였지요. 어디 물어 볼 데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저 책을 읽으며 짐작하고, 일단 써 보고, 지우고 다시 쓰길 반복하면서, 그렇게 글쓰기 연습을 했습니다. 속 시원하게 답을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어머니와 아내, 고부간 갈등이 심했습니다. 어느 집이나 한 번쯤은 겪는 일이니까, 그냥 참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안의 불화였지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만 좋아진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집에만 돌아오면, 모든 평화가 시작될 줄 알았습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우리 가족은 서로를 그리워했습니다.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더 바랄 것이 없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한동안 우리는, 서로의 입장만 내세우며 날을 곤두세우고 지냈습니다.
돈이 없어도 너무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어린 아들 치킨 한 마리 시켜주질 못했을까요. 먹고 살 만큼만 돈이 있으면, 아무 욕심 부리지 않고 착하게 잘 살 거라고 기도까지 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2년에 걸쳐 총 세 번의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입원실 창 밖에 뜨는 달을 보면서 빌었습니다. 아버지 건강 회복하기만 하면, 평생 잘 모시고 살겠다고 말이죠.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와는 결이 달라 자주 다퉜습니다만, 환자복을 입고 누워 있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졌습니다. 어머니가 두 다리로 걸을 수만 있게 된다면, 바닥에서 다시 시작해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자주 다투십니다. 두 분 사이가 좋아지길 바랐지요. 흔히 볼 수 있는 노부부의 싸움과는 격이 달랐습니다. 거의 '분노' 수준이었습니다. 저러다가 혈압 터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습니다.
2022년 10월. 지금의 제 삶은 어떨까요? 위에서 말한 모든 문제(?)들이, 지금은 모두 해결되었습니다. 가족 모두 건강하고, 먹고 살 만큼 돈도 벌고, 제가 하는 일도 잘 되고, 최신 노트북과 번듯한 책상, 무엇 하나 아쉬울 게 없습니다.
그런데요. 사람은 자꾸만 과거를 잊고 살아가는 모양입니다. 모든 바람이 다 이루어졌는데도, 자꾸만 제 속에 또 다른 뭔가를 바라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글을 더 잘 쓰고 싶고, 돈도 더 많이 벌고 싶고, 가족도 더 좋아지길 바라고, 인생도 더 나아지길 바라고...... 신이 저를 유심히 살핀다면, 얄미울 지경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네, 맞습니다. 모든 걸 가지는 게 아니라 더 바라는 게 없는 삶이지요. 부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마찬가지입니다. 더 욕심부리지 않으면 그게 부자입니다.
이렇게 쓰다 보니, 지금 제 삶이 참 좋고 만족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욕심부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쓰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품고,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지 말입니다.
그래서 매일 씁니다. 글을 쓰면, 지금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가 있습니다. 직시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많은 사람이 용기를 내지 못해서, 글 쓰기를 시작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걱정 근심이 많다면, 빈 종이에 한 번 적어 보길 권합니다. 아마 틀림없이 '이게 다인가?' 싶은 생각이 들 겁니다. 자신이 가진 것들도 한 번 적어 보면 좋겠습니다. 아마 분명히 '이렇게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라는 생각이 들 겁니다.
글을 쓰면 알 수 있습니다. '나'를 알 수 있고, '내 인생'을 알 수 있고, '지금의 나'를 똑바로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얻기 위해서, 저는 기꺼이 글 쓰기를 권합니다.
자꾸만 잊고 살아갑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작은 것을 바라고 살았는지. 소박한 꿈을 가지고 살았던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은 충분히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저는 자꾸만 잊고 살아가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글을 씁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