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오늘도 글을 씁니다
아버지는 평생 집안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그것이 늘 불만이었죠. 두 분은 맞벌이를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바깥일과 집안일을 모두 감당했습니다. 당연히 힘에 부쳤을 테고, 그럴 때마다 도와주지 아버지가 미웠을 겁니다.
저는 아버지보다는 어머니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어머니의 짜증과 화는 어린 저를 늘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화를 내면 긴장했습니다. 저 때문에 화를 내는 게 아닌데도, 저는 늘 숨을 죽여야 했지요. 어머니가 짜증을 부리면 가슴이 콩닥거렸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려서, 빨리 어머니 기분이 좋아지길 바랐지요.
어머니는 청소를 할 때 짜증을 부렸습니다. 설거지를 할 때도 화를 냈습니다. 빨래를 할 때도 한숨을 지었고요. 모처럼 가족 나들이를 가면, 그곳에서도 짜증을 부렸습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이어졌습니다. 어머니가 거실에서 청소를 하면, 저의 글 쓰는 속도는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거실 쪽으로 신경이 곤두서기 때문입니다.
깍두기를 담겠다 하십니다. 재래시장에 가서 무우를 사야 하고, 각종 양념과 필요한 재료를 구입해야 합니다. 저는 어머니한테 하지 마시라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허리와 다리가 성치도 않은데, 쪼그리고 앉아 김치를 담그면 분명 무리가 올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지요. 그렇게 몸에 무리가 오면 지치고 피곤할 테고, 그럼 또 짜증을 부릴 겁니다. 누가 깍두기 담그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먹고 싶다 말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저 어머니 마음이 휑하니 동해서 갑작스럽게 깍두기를 담겠다고 법석을 부리는 것이지요.
어쨌든 오늘은 그냥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닐 겁니다. 어머니는 한 번 하겠다 마음먹은 일은 꼭 해야 하는 성미거든요. 아마 조만간 다시 얘기를 꺼낼 겁니다.
"내가 내 마음대로 김치도 못 담그냐? 아무것도 하지 말고 누워만 지내야 되냐? 당장 가서 사가지고 와라!"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어머니한테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이죠. 뭔가 불안하고 초조해서 자꾸만 일을 벌리는 어머니한테, 조용하고 침착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머니 인생이니까, 자꾸만 뭔가 하지 않아도 아무 일 없을 거라고. 그저 편안하게, 먼지가 좀 묻어 있는 거실에 앉아 TV를 보며 잠들어도, 인생에 아무 문제 생기지 않을 거라고 말입니다.
먹고 살기 바쁜 인생은 어머니를 초조와 긴장으로 몰았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식구들 밥 다 차리고 설거지까지 끝낸 후에 출근을 했습니다. 퇴근길에는 항상 시장에 들러 찬거리를 샀고, 피곤한 몸으로 저녁밥을 지어 식구들 먹였지요. 밤 10시가 넘으면 세탁기가 돌아갑니다. 그러고는, 부서질 것 같은 몸으로 숙면을 취한다는 이유로 혼자서 소주를 드시곤 했지요.
어린 저는 매일 어머니한테 졸랐습니다. 같이 자자고요. 할 일이 태산처럼 남아 있는 어머니한테, 다섯 살 아들이 "같이 자자"며 조르는 말은 필시 가시가 되었을 겁니다.
어머니는 올해 여든입니다. 몸도 마음도 쇠약해지셨지요. 당신의 평생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그저 잘 살았다는 생각만 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아쉬움 많겠지요. 후회도 있고 안타까움도 있을 겁니다. 인생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 인간이 부여받은 삶의 멍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떨까요? 어머니를 꼭 닮았습니다. 한없이 평온하다가도, 무슨 일이 생기면 초긴장 상태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조울증 환자 같기도 하고, 이중인격자 같기도 합니다. 마음을 다스리고, 편안하게 살려고 노력 많이 합니다. 적어도 삶이 다하는 즈음이 되었을 때, 가슴을 치며 후회하는 일은 없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인생에도 백스페이스 키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수정액을 칠하고, 그 위에 다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제 인생도 제법 그럴 듯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인생을 수정할 수 없어서, 삶을 되돌릴 수 없어서, 저는 글을 씁니다. 다행히도 글은, 얼마든지 다시 쓸 수 있으니까요.
글을 고치면서, 인생도 돌아봅니다. 아쉬움이 남지만, 그 아쉬움이 더 커지지 않도록, 오늘도 쓰면서 살아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