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삶을 담는 글
아버지가 미울 때가 있습니다. 좋을 때도 있고요. 한없이 존경스러울 때도 있고, 왜 저렇게 고집이 셀까 이해하기 힘든 때도 있습니다. 매일 등산하시는 걸 보면 그야말로 감탄하게 되고, 집안일에 소홀하신 걸 보면 아쉽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머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리 절뚝거리시는 걸 보면 안타까운 마음 더할 수 없습니다. 무슨 일에든 꼭 한 마디 끼어드는 모습에는 진절머리가 나고요. 환하게 웃는 표정을 보면, 우리 엄마 아직도 참 예쁘구나 싶습니다. 별 것도 아닌 일로 잔소리할 때면 나이 들어도 아무 소용없구나 싶기도 합니다.
아버지가 좋을 땐 좋다고 씁니다. 어머니가 예쁠 땐 예쁘다고 씁니다. 아버지가 미울 땐 밉다고 씁니다. 어머니 때문에 화가 날 때는 화가 난다고 씁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쓴다고 해서 변덕을 부리는 것인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어제 쓴 글과 오늘 쓰는 글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니까요.
'아버지'를 소재로 한 글, 특히 SNS에 올라오는 아버지 이야기를 읽어 보면, 열 중 아홉은 좋은 이야기입니다. 훈훈하고 따뜻하지요. 세상 가장 효자 효녀인 사람들이 쓴 글 같습니다. 세상 가장 행복한 가족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글을 읽다 보면 이게 과연 사실인가 의심이 듭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랑만 합니까. 어떻게 사람이 좋은 말만 합니까. 어떻게 사람이 착하기만 할까요. 누구나 실수를 하고, 누구나 헛소리를 하고, 누구나 감정적인 말을 뱉습니다. 그럴 수 있지요.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다양한 모습을 가진 사람에 대해 한 가지 좋은 점만 언급하는 것은 가식적이며 위선적인 글입니다. 있는 그대로 글을 쓴다는 말의 의미는, '사실과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을 뜻합니다.
같은 사람이 하는 같은 말에 대해서도 그날의 내 감정에 따라 다르게 들리게 마련입니다. 존경하는 마음도 매 순간 그 정도가 다르고요. 때로 실망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오해가 풀려 더욱 우러러볼 수도 있습니다.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에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마땅찮을 때가 있지요. 두통이 심할 때는 사랑이고 나발이고 없습니다.
아침에 지각해서 팀장한테 혼나고, 돌아서서 커피 한 잔 타다가 확 쏟아서 흰 바지 다 버리고, 화장실에 가다가 발목을 접질러 엄청난 통증이 생겼다면,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인간관계가 있고 이해가 있고 배려가 있겠습니까.
상황에 따라, 감정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과 사고방식에 따라, 우리는 매 순간 다르게 반응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성질일 뿐, 결코 줏대없는 행위가 아닙니다.
글을 글처럼 쓰려고 애쓸 때 최악의 글이 됩니다. 글은 삶을 담는 과정입니다. 그럴 듯한 글을 쓰려고 노력할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삶을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보았는가, 무엇을 들었는가, 무엇을 경험했는가, 그래서 무엇을 느꼈는가.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고만 강조할 게 아니라, '오늘은 정말이지 긍정이란 단어를 떠올리기조차 싫은 날이다'라고 쓰는 것이 훨씬 아름답습니다. 솔직하니까요. 진실이니까요.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한다'고만 쓸 게 아니라, 살아오면서 겪었던 내 아버지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적는 것이 더 낫습니다. 아버지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 두렵다고요? 진실을 감추고 겉으로 좋은 말만 하는 것이 아버지를 위한 길은 아닐 겁니다. 무조건 흉을 보자는 게 아니지요. 아버지조차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세상을 다룰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어떻게 써도, 아버지에 관한 좋은 이야기가 더 많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는, 아직도 많은 의문이 생긴다고 말하는 이가 있을 겁니다.
그래도 가족인데, 상처를 주면 안되지 않나요?
어디까지 써야 합니까? 어느 선까지 진실을 써야 하나요?
직장 상사에 대한 진실을 썼을 때, 부당한 처우를 받게 되면 어쩌나요?
있는 그대로 쓰면, 제가 너무 초라해질 것 같은데요.
저기, 죄송합니다만, 일단 한 편 써 보고 얘기하면 안 될까요? 글은 써 보지도 않고, 자꾸만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만 하면 어쩝니까? 누가 지금 당장 그 글을 책으로 내자고 했습니까? 그럴 실력은 됩니까? 일단 한 번 써 보는 겁니다. 자신의 마음이 어떠한지, 진짜 이야기는 무엇인지, 감정의 핵심은 무엇인지...... 이런 것들을 죄다 적어 봐야 사실과 감정을 뚜렷하게 알 수 있는 겁니다.
일단 써 보고, 그 다음에 판단하고 선택하면 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매일 꾸준히 적다 보면, 자신이 세상과 자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지 조금씩 알게 됩니다. 그 때 가서 자신이 쓴 글을 공개할지 여부를 결정하면 되는 것이죠. 글은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쓰는 겁니다.
지금까지 개인저서 일곱 권 냈습니다. 전자책 세 권 출간했습니다. 블로그에 약 5,300건의 글이 있습니다. 방대한 양의 온갖 이야기를 다 썼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제가 쓴 글 때문에 등 돌린 사람도 없고, 원한 맺은 사람도 없으며, 가족 불화 생긴 적도 없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도 없습니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면 별별 일이 다 생깁니다. 실제로 글을 써 보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생각만 하는 사람은 계속 불안에 떨며 생각만 하게 되고, 실제로 글을 쓰는 사람은 신나게 계속 쓰는 것이죠.
싫다, 밉다, 죽이고 싶다, 짜증난다...... 누군가에 대해 폄하하라는 게 아닙니다. 개인적인 감정을 마구 던지듯 쓰는 것도 별 의미가 없습니다. 팩트를 써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왜, 어떻게 했는가. 육하원칙에 따라 하나하나 적어 나가다 보면, 자신의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도 찾을 수 있습니다.
가려 쓰지 않아야 글 쓰는 습관을 잡을 수 있습니다. 골라 쓰지 않아야 글 쓰는 재미를 붙일 수 있습니다. 그럴 듯한 글을 쓰기 위해 세상 좋은 말만 늘어놓는 글, 세상 가장 재미없는 글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