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잠든 쓰기의 욕구
어떤 꽃이든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 작은 몸통에 화려한 형형색색 꽃을 피우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집니다. 참 기특하고 대견한 녀석들이죠. 어쩜 그리도 아름답고, 또 사람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주는 힘을 가졌는지요.
꽃은 혼자서 피지 않습니다. 토양과 바람과 햇살과 비와 눈이 꽃을 피게 합니다. 암흑 속에서는 결코 꽃을 피울 수가 없는 것이죠. 좋은 토양과 적당한 바람과 햇살, 그리고 적정량의 비와 눈이 꼭 필요합니다. 한송이 꽃이 피기 위해서는 외부 환경과 조건이 딱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외부 환경과 조건이 딱 맞아 떨어져도, 꽃 자신이 가진 생명력이 없으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씨앗의 형태로 태어나는 꽃은, 그 안에 이미 꽃이 될 모든 자격과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 생명력이 외부 환경과 조건을 만나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납니다.
우리 안에는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갖고 있는 힘이지요. 1만년 전 동굴 벽에다 뭔가를 끄적이던 '표현의 욕구'가 우리 모두의 유전자에 깊이 새겨져 있다는 말입니다.
아름다운 꽃을 보면 글을 쓰고 싶듯이, 뭔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이 내 안에 깃든 쓰기의 욕구와 만나 글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써야 할까? 어떻게 써야 할까? 많은 분들이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대부분은 '머릿속에서' 글감을 떠올리려 합니다. 쓰기가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받아쓰기 개념과 같습니다. 외부 환경과 조건을 만나 내 안에서 싹트는 쓰기의 욕구를 그대로 받아적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가장 먼저 살펴야 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입니다. 쓰고 싶은 충동이나 욕구가 있는가. 당연한 소리 같지만, 아쉽게도 많은 이들이 '쓰기의 욕구'보다는 '타인으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은 욕구'를 더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책 쓰는 이유나 본질보다는 출간이라는 성과물에 더 관심이 많은 것이죠.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사람들로부터 예쁘다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강박을 전혀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피어날 때도 고요히 아무 호들갑 없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질 때도 미련없이 고개를 숙입니다. 일 년이 지나면 또 다시 고운 자태로 피어날 거란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글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한테 칭찬과 인정 받으면 기분 좋지요. 하지만 그 때뿐입니다. 타인의 시선에 집착할수록 불안하고 초조해집니다. 어쩌다가 칭찬과 인정 받을 때도 있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다른 사람 눈치 보며 살아야겠지요. 시련과 고통을 자초하는 셈입니다.
두 가지는 항상 연결되어야 합니다. 내가 가진 품성과 느낌, 그리고 외부 세상입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비를 보면 축복의 노래로 들리지요. 이별한 사람이 비를 보면 슬픔의 눈물로 느껴집니다. 모든 것은 내 안에서 시작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평소 관심을 갖고 집중해야 할 것은 '자신의 마음'입니다.
마음에 집중하면, 보고 듣는 모든 것이 글감이 될 수 있습니다. 꽃이 피어나는 걸 '자연스럽다'고 말하듯이, 무언가를 보고 들은 후에 한 편의 글을 쓰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인 셈이죠.
글감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글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가 문제입니다. 꽃이 막 피어나려는데, 스스로 안 예쁘다 하면서 도로 지는 꼴이나 다름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글로 쓰다 보면, 때로 참한 글이 나오기도 하고, 영 아니다 싶은 글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에 연연하지 말아야 합니다. 글이란, 쓰는 행위 자체가 소중하고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집중해야 합니다. 뿌옇고 탁하다 싶으면 생각을 정리하면서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고요. 맑고 밝으면 감사히 여겨야 합니다. 들뜨고 기고만장하다 싶으면 겸손한 태도 갖기 위해 고개 숙여야 하지요.
인생 절반쯤 살았는데요.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말 들어본 적 없습니다. 제가 사는 세상은 늘 힘들었고, 좋지 않았고, 무슨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렇지 않을까요? 세상에서 뭔가 얻기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혼탁한 세상에 뭔가 기대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에서 맑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겠다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피어날 힘을, 글을 쓸 능력을, 살아갈 힘을, 모두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입니다.
연휴 마지막날입니다. 오늘은 근심이나 걱정에서 벗어나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 가지려 합니다. 흙먼지와 오물이 가라앉도록 고요하게, 그렇게 하루를 맞이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