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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책을 써야 하는가 묻는다면

그저 다행입니다

by 글장이


글이 잘 써지지 않았습니다. 초보 작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아니 그보다 더 많이 경험했을 법한 일이지요. 쓰고 싶다, 써야 한다는 생각은 가득하지만, 막상 노트북 앞에 앉으면 머릿속이 새하얗게 텅 비어버리곤 합니다.


장모님의 몸에는 암 세포가 번지고 있었습니다. 맨 처음 병원에서 암 확진을 받고, 몇 차례 치료를 받으며 호전되는 것 같았지요. 하지만 끝내, 암은 장모님의 온몸으로 번지고 말았습니다. 아직은 정신이 온전할 때였습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모든 것을 잃은 저를 보며 "이서방, 이서방은 틀림없이 다시 일어설 거네. 기죽지 말고 힘 내게." 라며 응원해주셨습니다.


세상 딱 한 사람. 오직 장모님만이 저를 향해 웃음을 보여주셨지요. 그 때의 한 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아직 정신이 온전하실 때, 아직 보고 듣는 것이 가능할 때, 저는 장모님에게 뭔가를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2016년 2월 22일. 첫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아쉽게도, 장모님은 이미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습니다. 그토록 바랐던 '이서방의 새로운 시작'을, 장모님은 끝내 보지 못하셨습니다. 조금만 빨리...... 조금만 일찍 썼더라면......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3월의 어느 날, 장모님을 공원묘지에 모셨지요. 함께 장례를 치른 일가 친척들이 모두 주차장으로 내려갔을 때, 저 혼자 장모님 앞에 섰습니다. 그러고는 비석 앞에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가지런히 놓았습니다. 빗물과 눈물이 섞여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거짓말같이 순식간에 비가 그쳤습니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간신에 떼고 돌아서는 순간, 따스한 햇살이 뒷목에 비쳤습니다. 그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책을 쓰는 이유를 묻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에 대한 답도 다양하지요. 저도 여러 가지 답변을 할 수 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독자를 위해, 치유를 위해,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인정 받기 위해...... 개인마다 이유가 다를 테지요.


일곱 권의 책을 냈습니다. 그 사이에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보내드렸고요. 아버지와 어머니도 많이 늙으셨습니다. 왜 책을 쓰는가 묻는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장모님 마음에 제 책을 드릴 수 있어 다행입니다. 아주 조금, 사위의 죗값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도 섞지 않으셨던 아버지 품에 제 책을 안겨드렸지요. 자식으로 인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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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책을 씁니다. 지금도 글을 씁니다. 거창하고 대단한 이유도 많겠지만, 바로 옆에 있는 세상 가장 소중한 사람을 위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책은, 나의 책은, 그들의 마음을 달랠 수 있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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