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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여행이라면

자유롭게

by 글장이


여행은 그 자체만으로 자유입니다. 몇 시에 어디로 가서 무엇을 볼 것인가, 짜여진 각본 대로 움직일 필요가 없습니다. A코스로 가기로 결정했었지만, 오늘 아침 눈을 떠 보니 마음이 달라져 B코스로 간다고 해서 아무 문제될 것이 없지요. 오전 10시에 출발하기로 했으나, 갑자기 하늘빛이 예뻐서 아침 7시에 출발할 수도 있습니다.


몇 시에 출발해서 어떤 길을 통해 어디에 도착했는가. 여행에 있어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닙니다. 무엇을 보고 느끼고 깨달았는가! 여행을 가기 전의 나와는 '다른' 존재가 되었는가! 우리가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바로 이런 것들이죠.


여행하는 사람 중에는 마치 쫓기듯 급하게 서두르는 이도 많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빨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합니다. 경주를 하듯, 시합을 하듯 헉헉거리면서 여행합니다. 준비할 때부터 이미 머릿속이 복잡하지요.


사진 찍기에 급급한 사람도 많습니다. 눈으로는 보지 않고 렌즈로만 봅니다. 그냥 집에서 인터넷으로 사진 검색만 해도 될 일을, 왜 굳이 먼 길 다니는지 모르겠습니다. 폰에 담을 게 아니라 마음에 담아야 하는데. 여행 다녀오고 나서 여기저기 SNS 올리고 주변에 자랑질하기 위해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입니다.


자꾸만 지름길을 찾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지요. 느긋하게 걸으면서 하늘과 바람과 땅을 느껴야 하는데, 택시 타고 슝 이동합니다. 한라산 없이 백록담만 챙기는 꼴이죠.


글쓰기는 여행과 같습니다. 글을 쓰면서,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하루를 빼곡하게 채우는 이들에게, 글쓰기는 오직 나만의 이야기를 펼쳐내는 '하지 않아도 되는' 행위입니다. 자유롭지 못한 이들에게 자유를 선물하는 일. 저는 제 업을 이렇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여행에도 위와 같은 오류가 발생하듯이, 글쓰기도 똑같습니다. 자칫 잘못 생각하면 글쓰기는 자유가 아니라 억압이 되고 말지요.


글을 쓸 때도 쫓기듯 서두르는 사람 있습니다. 아무도 '빨리 쓰라'고 강요하지 않았는데, 혼자만 급합니다. 쓰는 행위에 집중하지 않고 끝내기에만 바쁜 것이죠. 많은 초보 작가들의 글 마무리가 급합니다. 조금만 여유를 갖고 진득하게 마무리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운 글이 많습니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하는데, 어떻게든 자신의 글을 여기저기 공유하기에 바쁜 사람도 많습니다. 좀 썼다 싶으면 입이 간질간질한가 봅니다. 치유가 되었다는 둥,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는 둥, 쓰는 삶이라 행복하다는 둥....... 아주 헤밍웨이 납셨습니다. 어쩜 그리도 빨리 깨닫고, 어쩜 그리도 깨달음을 빨리 잊어버리는지, 아주 그냥 속전속결입니다. 가볍게 촐랑거리고 들썩여서 도무지 믿음이 가질 않습니다. 지난 수 년 동안 그 많던 '깨달은 자들'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글을 쓸 때도 지름길 찾는 사람 많습니다. 잘 쓰는 방법, 빨리 쓰는 방법, 빨리 잘 쓰는 방법...... 닥터 스트레인지에 너무 몰입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해리 포터게 심취한 탓일 수도 있지요. 지름길 따위, 글쓰기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매일 묵묵히 써 나가는 것이야말로 글쓰기 최고의 마법이지요.


글쓰기가 여행이라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틀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A코스로 가지 말고, 오늘은 마음 내키는 대로 한 번 걸어 보는 것이죠. 오전 10시에 출발하기로 했다면, 오늘은 아침 7시에 출발해 보면 어떨까요?


반드시 어디에 도착해야 한다는 강박도 벗어던지고요.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조급증도 내려놓습니다. 길을 잘못 들면 어떻습니까. 다시 돌아가면 되고, 다른 길로 가면 되고, 좀 쉬다가 가면 되지요. 자유롭기 위해 선택한 길 아닙니까. 호흡을 좀 크게 하면 좋겠습니다.


여행의 끝은 어디일까요? 네, 맞습니다. 집입니다. 우리는 모두 결국 집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더 멀리, 더 높이, 더 빨리 가려고 애쓰지만, 결국은 다시 돌아오기 위함이지요. 돌아왔을 때 허탈하지 않으려면, 악 쓰며 살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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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행 중이란 사실, 혹시 깜빡하신 건 아닌가요? '열심히 여행'하는 것도 좋겠지만, '즐겁게 여행'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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