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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바라보기

한 걸음 물러나 관망하는 태도

by 글장이


도로에서 끼어드는 차량과 시비가 붙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멱살을 잡은 것은 아니지만, 서로 창문을 내리고 상대방을 향해 험한 소리를 퍼부었지요. 이런 싸움의 특징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웬만하면 치고 받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주둥이 파이터'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당장이라도 죽일 듯이 욕설을 내뱉지만, 그걸로 끝입니다.


둘째, 시간이 흐르고 나서도 계속 그 장면을 떠올리며 상대를 향해 온갖 말을 다 퍼붓습니다. 이미 그 일은 끝났고, 그 사람 다시 볼 일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혼자 머릿속으로 계속 상상하면서 불쾌한 마음을 가지곤 합니다.


셋째, '그 일' 자체가 별 것 아니란 사실입니다. 누가 다친 것도 아니고, 접촉 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그저 끼어드는 차량 때문에 화가 났을 뿐이지요. 인생을 놓고 보면, '경험했다'고 할 만한 가치조차 없는 일입니다.


'화'는 에너지를 빼앗아 갑니다. 다른 중요한 일에 써야 할 에너지를 분노와 감정에 써버린 탓에 성장과 발전에도 방해가 되지요. 화가 났을 때에는 무조건 참지 말고 화를 내라는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화라는 감정이 일단 내기 시작하면 자꾸만 꼬리를 문다는 게 문제입니다.


이럴 때에는 한시라도 빨리 감정을 가라앉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니지요. 다스리기 곤란하고 힘든 감정입니다.


저는 화가 날 때마다 이렇게 합니다. 우선,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화가 났을 땐 달리 방법이 없더라고요. 소리도 지르고 험한 말도 합니다. 하지만 계속 그 감정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다. 둘째, 반드시 글을 씁니다. 글을 쓰고 나면 예외없이 감정이 사그라듭니다. 셋째, 다 쓰고 나면 제가 쓴 글을 몇 번 반복해서 읽습니다. 그러면 또 예외없이 저 스스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화가 났을 때 글을 쓰면 왜 감정이 가라앉을까요? 네, 맞습니다. '물러서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바둑 두는 사람보다 곁에서 훈수 두는 사람 눈에 더 잘 보입니다. 경기장에서 열심히 땀 흘리며 뛰는 선수보다 관중석에서 더 잘 보이지요. 한 걸음 물러나 관망하면 줄기가 보이고 핵심이 보입니다.


화가 난 상태에서 그대로 있으면 감정 속으로 파묻히게 됩니다. 나는 계속 옳고 상대는 계속 그릅니다. 나는 계속 잘났고 상대는 계속 못났지요. 마치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양, 옳고 그름을 따지며 '내가 정당하다'는 사실만 강조하게 됩니다. 그렇게까지 목숨 걸 일도 아닌데 말이죠.


아마 한 번쯤은 경험했을 겁니다. 오래 전 엄청나게 화가 났던 일을 한 번 떠올려 보세요. 지금도 여전히 그 때처럼 화가 날까요?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대부분은 제대로 기억조차 못할 겁니다. 한참을 생각해야 겨우 그 때 그런 일이 있었지 정도 떠올릴 테지요.


화를 내면 내가 곧 화가 되어버리지만, 글을 쓰면 화를 내고 있는 내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강물에 빠져 있으면 떠내려가지만, 강물을 바라보면 유유하고 여유로와집니다.


화 뿐만 아닙니다. 대부분 감정은 이렇게 글을 씀으로써 바라볼 수 있습니다. 좋아서 마구 날뛰는 나 자신을 바라보면 저절로 차분해지고요. 속상해서 짜증내는 나 자신을 바라보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글 쓰는 행위가 감정 그 자체에 빠지지 않고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해주는 힘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내가 겪고 있을 때에는 죽을 것처럼 힘들지만, 한 걸음 물러나 글을 쓰면서 돌이켜보면 어떻게든 풀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엄청난 위력이지요. 시련과 고통을 이겨낼 가능성이 생기기 시작하니까요.


삶이 술술 풀리지 않는 이유는, 매듭 속에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다 잘 될 거라는 믿음으로 한 걸음 물러나, 자신의 상황과 주변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면 꼭 되묻는 사람 있습니다.


"아니,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어떻게 그리 속편한 말을 할 수가 있지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격한 감정에 휘둘리고 혼란에 빠진다는 것은 애초부터 그럴 듯한 방법이 없다는 얘기 아닌가요? 뾰족한 방법이 없다면 걱정하고 근심하고 화를 낸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지 않습니까? 조금이라도 마음을 편안하게 갖는 것이 훨씬 이롭습니다. 그래서 글 쓰기를 강조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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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기도 연습해야 합니다. 훈련해야 합니다. 습관이 될 때까지 참고 견뎌야 합니다. 대신, 이 모든 노력의 끝에서 인생을 바라보는 힘을 갖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평온하고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될 겁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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