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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결혼생활

아무 문제 없습니다

by 글장이


꿈을 안고 결혼했습니다. 서로에게 기대 행복한 여행을 즐길 줄로만 알았지요. 결혼식 때 주례사가 '고난과 역경'을 만날 거라고 했지만, 우리 두 사람 앞에 그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아내는 저에게 커다란 기대를 했습니다.


다들 잘 알겠지만, 그러한 기대가 무너지는 데에는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습니다. 신혼여행에서부터 툭닥거리기 시작하지요. 달콤한 꿈은 금세 깨지고, 서로에 대한 불만이 점점 쌓여가기도 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나 기대가 무너지면 파국에 이르기도 하고요.


나름의 지혜로운 방법으로 화해를 하기도 합니다. 함께 여행을 간다거나, 캔맥주를 한 잔 나눌 수도 있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얼마 동안 대화를 하지 않고 각자만의 시간을 가지면 저절로 마음이 풀릴 때도 있습니다.


결혼에 관한 생각을 하다 보니, 글쓰기와 결혼이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몇 가지 정리해 봅니다.


첫째, 시작할 때 꿈에 부풉니다. 작가가 된다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뜁니다. 새로운 도전이지요. 무엇을 쓸지, 어떻게 쓸지 아직은 잘 모르지만, 그래도 글을 쓴다는 것이 왠지 멋있게 보입니다. 약간은 두렵기도 하지만, 어쨌든 좋은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둘째, 금세 실망합니다. 한 꼭지만 써도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상대에게 실망하듯이, 자신이 천재적인 실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술술 써지지 않아' 좌절하는 것이죠.


셋째, 화가 나고 속상하면 등을 돌립니다. 부부 사이에 있어서는 대화를 멈추는 시간이 고작 며칠에 불과하지만, 초보 작가가 글 쓰기를 외면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꽤 깁니다. 아예 펜을 놓기도 하지요. 각방을 쓰거나 이혼을 하는 경우도 잦습니다.


넷째, 문제는 항상 상대방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편은 아내 탓을 하고 아내는 남편 탓을 하지요. 작가는 그보다 훨씬 많은 '탓'을 합니다. 시간 때문에, 아이들 때문에, 논문 때문에, 컴퓨터 때문에, 약속 때문에, 일 때문에, 시댁 때문에, 회식 때문에, 피곤해서, 머리가 아파서,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서, 기분이 나빠서, 날씨가 더워서......


다섯째,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좋아 죽습니다. 이혼까지 생각했던 부부가 열정적인 잠자리를 갖습니다. 다 때려치우겠다고 했던 작가가 갑자기 연말까지 꼭 책 한 권을 쓰겠다며 주먹을 불끈 쥡니다.


어떻습니까? 결혼생활과 글쓰기, 꽤 닮았지요? 그렇습니다. 사는 게 다 이렇습니다. 좋아서 환장을 하다가도 하루만에 싸우고, 죽일 듯이 싸우다가도 함께 외식을 하고, 등 돌리고 말도 섞지 않다가 무슨 문제가 생기면 같이 머리를 맞대로 고민합니다.


반드시 쓰겠다며 머리에 띠를 둘렀다가, 사흘만 지나면 힘들고 어렵다며 하소연합니다. 그러다가 또 한 꼭지를 쓰고는 며칠간 연락이 두절되기도 합니다. 블로그에다 '글쓰기를 통해 치유되었다'며 엄청난 고백을 쓰기도 하고, 또 며칠이 지나면 도저히 쓸 수가 없다며 고뇌하는 헤밍웨이 흉내를 내기도 합니다.


사는 게 이렇습니다. 글 쓰는 게 이렇습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적인 거장도 글이 써지지 않아 밤새 술을 마셨고, 글을 쓰기 싫어서 집안 청소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 생각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내가 미울 때도 있고 남편이 싫을 때도 있지요. 한결같이 뜨거운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로미오와 줄리엣이 지금 다시 만난다면, 로미오는 양말을 뒤집어 벗을 테고 줄리엣은 잔소리를 퍼부을 겁니다.


글 쓰는 사람은 누구나 막막할 때가 많습니다. 어렵고 힘든 과정 다 겪고, 쓰기 싫을 때도 많지요. 손만 대면 술술 써지는, 그런 작가는 세상에 없습니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아이디어를 팍팍 돌아가게 만드는 묘법 따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힘들었다가, 제법 써졌다가, 쓰기 싫었다가, 귀찮았다가, 자꾸 미루다가, 또 쓰다가...... 이런 과정을 모두 지나 한 편의 글을 한 권의 책을 완성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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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책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을 비난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더 좋으려고, 더 행복하려고, 더 나은 인생을 위해 글을 쓰려는 것이지요. 그런데 자꾸만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생각과 말을 하면 어쩝니까.


잘하고 있습니다. 이런 고민과 번뇌를 하는 자체가 이미 작가라는 뜻이지요. 글 쓰지 않는 사람은 이런 경험조차 하지 못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과정까지 모두 글에 담아 책으로 내주세요. 당신의 이야기니까요.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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