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믿는 마음
세상에 태어날 때 어떤 준비를 했습니까? 저는 하나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끔찍한 일이죠. 이 험란하고 치열한 세상에 나오면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그냥' 태어났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태어났지만, 돌아보면 그럭저럭 잘 살아온 것 같습니다.
걸음마는 어떻게 배웠습니까?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씀을 들어 보면 저는 '그냥' 걷기 시작한 듯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두 다리로 일어서서 뒤뚱뒤뚱 걷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책을 보고 배운 것도 아니고, 별도의 코치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저는 '그냥' 걷기 시작했고, 평생 걷고 있습니다.
밥은 어떻게 먹게 되었을까요? 맨 처음에는 이유식을 먹었을 텐데요. 본능적으로 엄마 젖을 빨고, 입안에 뭔가 달콤 쌉싸름한 것이 들어오면 삼키면서, 그렇게 배를 채웠습니다. 이가 나기 시작한 후로 씹어 먹는 음식도 찾았을 겁니다. 먹는 벌 배운 적 없습니다. '그냥' 먹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잘 먹고 있고요.
태어나고, 걷고, 먹는 것. 저는 삶에 필요한 이 모든 것들이 가능했던 이유를 '확신'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나의 '무의식'이 나 자신을 믿었기 때문이지요. 일단 태어나 어떻게든 살아낼 수 있다는 믿음! 수많은 실패를 겪으면서도 결국은 두 다리로 걷게 될 거라는 믿음! 본능적으로 먹고 씹고 삼키면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 무의식적인 자기 확신과 믿음이 저를 지금까지 살아오게 만들었습니다.
예전에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잘 못 되면 어쩌나 근심했었지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한숨을 쉬며 불안해 했습니다. 그러나,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저 자신에 대한 무의식적 신념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어떤 일을 하든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합니다.
걱정과 불안으로 시작하는 일과 자기 확신을 갖고 시작하는 일.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 일은 여지없이 결과가 좋지 않았고요. 잘 될 거라고 생각한 일은 모두 성과도 좋았습니다. 미신이나 영성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에너지입니다. 잘 된다고 믿는 에너지가 실제로 그 일을 잘 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죠.
처음부터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기본기를 다지고 대학에서 전공한 사람은 조금 다르겠지요. 하지만, 그들조차도 시작부터 글을 술술 쓴 것은 아닐 겁니다. 힘들다, 어렵다 말하는 이들에게 글쓰기에 도움될 만한 이야기를 몇 가지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두 가지 시간을 정하고 시작하십시오. 매일 글 쓰는 시간과 마감 시간입니다. 잘 쓰고 못 쓰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가 걸음마를 연습할 때, 잘 걸어야 한다는 강박 따위 없지요. 엉덩방아를 찧으면서도 그저 걷는 겁니다.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을 정해두고, 그 시간에 맞춰 무조건 글을 씁니다. 힘들다, 어렵다 생각할 겨를조차 없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둘째, '위대한 작가인 척' 글을 써야 합니다. 위대한 작가는 툴툴거리지 않습니다. 위대한 작가는 설거지보다 글을 먼저 씁니다. 위대한 작가는 어찌됐든 '글 쓰는 시간'을 확보합니다. 위대한 작가는 다른 사람 말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셋째, 감사하는 마음이야말로 글쓰기 시작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어떻게든 다른 사람 끄집어내리려는 못된 심보로는 결코 좋은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모였다 하면 다른 사람 씹는 인간들이 있습니다. 불쌍하고 안됐습니다. 자신의 얘기는 할 만한 게 없으니까 다른 사람 흉이나 보고 앉아 있는 것이죠. 마음이 곱지 않으면 백날 글 써 봐야 아무 짝에도 쓸모 없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으로, 그렇게 글을 써야 합니다.
작가로 살아가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과정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 해도 오직 결실만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편의 글을 다 채우고 나면 그 날의 몫을 다 한 셈이죠. 온갖 생각이 다 들고, 쓸 때마다 벽을 만나지만, 그런 건 다 상관없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쓸 것이고, 결국 한 편의 글과 한 권의 책을 완성할 테니까요.
어떻게 써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요? 세상에 알고 쓰는 사람도 있습니까? 그런 사람 없습니다. 조정래 선생도 모른 채 썼을 테고, 박경리 선생도 모른 채 썼습니다. 잘 모르지만, 살면서 삶을 익히듯이. 잘 모르지만, 쓰면서 쓰기를 익혀 갑니다. 작가니까요.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