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게 살아야지
용인에 사는 누나는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이번 설에 제주도 다녀왔다 합니다. 혼자 사는 친구의 초대로 그 집에서 며칠 묵었다 하네요.
소식 접한 가족 분위기가 영 별로입니다. 할머니 제사, 어머니 생신, 설 준비까지. 정신없이 바빴던 우리 사정과는 달리 누나는 여유롭고 즐겁구나. 상대적 비교를 하게 된 것이지요.
저는 누나의 개인 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썩 좋지 않거든요. 이번에도 누나 친구가 무료 항공권 있다 해서 다녀온 겁니다. 이런저런 사정 모르는 가족은 단순히 제주도 다녀왔다는 사실만으로 부러워하는 것이죠.
가족 모두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싶었습니다. 하루 세 끼 밥만 챙겨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남들처럼 저축도 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면 더 욕심부리지 않겠다 다짐했었지요. 육체 노동 말고, 뭐라도 좀 덜 힘든 일 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과거 제가 바랐던 모든 일은 다 이루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신기하고 용하다 싶습니다.
그럼에도 자꾸만 더 바랍니다. 돈을 더 많이 벌고 싶고, 여유를 더 갖고 싶고, 여행도 다니고 싶고, 차도 바꾸고 싶고, 아들도 잘 되길 바라고, 가족 더 화목하길 바라고, 큰 집으로 이사 가고 싶고, 서재도 하나 갖고 싶고...... 도무지 끝이 없습니다. 욕심이 늘어갈수록 마음은 초췌해집니다.
제주도 다녀온 누나와 비교하면 명절 치르느라 고생한 우리 현실이 못마땅합니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 무너진 경제 때문에 이번 설에 가족 얼굴조차 보지 못한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과 비교하자면, 우리 가족은 복 받은 거지요.
모든 일은 상대적입니다. 동네 슈퍼마켓은 구멍가게보다는 낫고 홈플러스보다는 못합니다. 구멍가게와 비교하면 살 만하고, 홈플러스와 비교하면 평생 아쉽습니다.
30만원 버는 사람과 비교하면 100만원 수입도 감사할 일이지만, 300만원 버는 사람과 비교하면 100만원 가지고는 도저히 못 살겠다 싶습니다.
어찌해서 300만원 벌게 됐다 치더라도, 다시 500만원 버는 사람과 비교할 테니 그 불행 끝이 없다는 소리지요.
생각이라는 게 참 요상합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과의 비교해서 다행이다 싶은 마음은 오래 가지 않거든요. 그런데, 나보다 잘난 사람과의 비교로 쓰리고 배아픈 마음은 지독하게 오래 갑니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부유하게 살아가는 방식에 명확한 목적지는 없습니다. 아무리 '잘 살아도' 더 잘 사는 사람 모습이 보이게 마련입니다. 행복은 멈춤에서 비롯되는데 도무지 멈추질 못하니 불행할 수밖에요.
세상에는 나보다 어렵고 힘든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초점을 그들에게 맞추면 지금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이 여유를 불러옵니다. 여유가 생기면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고요. 도우며 살면 더 풍요로와질 수 있습니다.
모든 걸 잃고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싶을 때 '돕기' 시작했습니다. 자이언트 최초 수강료는 22만원이었습니다. 제목과 목차 무료 기획 제공, 평생 무료 재수강 등 지금과 똑같은 조건이었지요. 돈 받고 강의했지만, 내용은 220만 원짜리였습니다.
책쓰기 또는 책쓰기 수업으로 떼돈을 벌었다는 사람들 광고가 판을 치던 때입니다. 그런 광고 볼 때마다 마음 흔들렸고, 내심 부럽기도 하고 욕심 나기도 했었지요.
형편 어렵지만 꼭 책을 내고 싶다는 사람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들을 볼 때마다 오히려 저는 '풍요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더 '많다' 싶으니까 나눌 수 있었던 거지요.
제주도 다녀온 누나를 부러워하고 있으면 생각이 좁아지고 조급해집니다. 누군가를 돕기는커녕, 악착같이 더 벌어야겠다는 조바심만 생길 뿐이지요. 내 것에 집착하고, 빼앗기기 싫어하고, 사사건건 불평과 불만 터져나오기 일쑤입니다.
아버지도 툴툴거리고, 어머니도 궁시렁궁시렁, 아내도 씁쓸해합니다. 평소에 아무 근심없이 멀쩡하게 즐겁게 잘 살던 가족이, 누나 제주도 다녀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엉망이 되어버린 것이죠. 이 얼마나 한심하고 우스꽝스러운 꼴인가요.
내 다리 다쳐서 아픈 게 아니라, 남의 다리 건강하다는 이유로 상처를 받으니 해결 방법조차 없는 불행이지요.
제가 다시 감옥에라도 가야
지금이 좋은 줄 아시겠습니까!
때로 충격 요법이 필요합니다. 제 입에서 두 번 내뱉고 싶지 않은 말을 결국 하고야 말았지요.
아버지는 수저 놓고 방으로 들어가셨고, 어머니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아내는 민망한 듯 설거지를 시작했습니다.
주변 사람한테 좋은 일 생겼으면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그랬구나 하고 돌아서면 그 뿐입니다. 누구한테 안좋은 일 생겼으면 함께 아파해주고, 어서 빨리 좋아지길 기도해주면 될 일이지요.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는 건 모두가 시간 낭비입니다. 좋은 일 생긴 사람 부러워하는 것도 시간 낭비이고, 나쁜 일 생긴 사람 도움도 안되는 걱정으로 생색내는 것도 헛일입니다.
내게 주어진 몫의 삶에 감사하고, 도움 청할 때 기꺼이 도와주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내 삶에 흠집 나지 않게 살아야 합니다. 마음 하나 잘못 쓰는 것이, 생각 하나 삐뚤게 하는 것이, 인생을 얼마나 망치는 일인지 결코 잊어서는 안되겠지요.
누군가를 부러워하면서 사는 인생. 참 못났습니다. 타인의 삶을 흉내 내려 애쓰며 사는 인생. 참 구차합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쳐내는 것이 바람직한 삶입니다. 나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으로 누구를 도울 수 있는가. 이런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인생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