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는 힘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람 모두 몇 명인지 모른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 대부분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두었으니까. 아마 엄청 많을 테지.
외롭고 힘든 날. 문득 전화기를 손에 들었는데, 마땅히 전화 걸 만한 사람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더라. 굳이 한 사람씩 더듬어 보았다면, 누군가에게 전화 걸었을 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 전할 만한 사람 찾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싶지는 않았다.
잠시 밖에 나가 걷다가, 집에 돌아와 책을 펼쳤다가, 이런저런 글을 썼다가. 마음을 잡지 못했다. 그런 날이 있다. 갈 곳도 마땅치 않고 만날 사람도 없고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도 속이 시원하지 않을 것 같은 날.
그럴 때 보통 두 가지 방법을 선택한다. 소설을 쓰거나 클래식을 듣거나.
소설은 한 번도 출판한 적 없다. 감옥에서 다섯 편의 장편 소설을 썼지만 세상에 내놓을 만하지 못하다. 여전히 낯설다. 어렵다. '내 것' 같지가 않다. 그래서 요즘처럼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만 쓴다. 어색하고 불편한 일. 새로운 일. 혹시 내게 또 다른 능력이 있지는 않은지 호기심에 문을 두드려보는 것이다.
클래식은 아예 모른다. 어딘가에서 들어본 적 있는 음률 정도. 3분만 넘어도 딴 생각에 빠지고 만다. 대중 가요나 트로트, 7080 팝송을 즐겨 듣는다. 나에게 음악이란 이 쯤이 전부다. 속내 터놓을 사람 마땅치 않을 때, 클래식을 듣는다. 내가 잘 모르는 세상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위로가 된다.
기댈 곳이 없다 싶을 때, 낯선 글을 쓰거나 익숙지 않은 음악을 듣는 것. 독특한 습관이기도 하지만 꽤 많은 위로와 격려를 얻으며 살았다.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나 동기가 아직도 내 안에 있다는 사실에 에너지가 꿈틀거리곤 한다. 그렇다. 누구에게도 말을 건네기 힘들 때, 나는 내 자신을 믿는다. 더 철저하고 확고하게!
사람은 서로 기대어 사는 거라고. 그래서 사람 인(人)이라는 상형문자가 생긴 거라고. 어렸을 적부터 배웠지만, 글쎄다, 세상이 어디 이론처럼 되는 곳이던가.
힘들고 아플 때, 누군가의 한 마디나 따스한 눈빛만으로 용기와 희망을 품는 때도 많다. 그럴 때마다 그들이 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하지만, 아닐 때도 적지 않다. 그들의 마음과는 달리, 내 마음이 열리지 않을 때. 굳이 말 꺼내봐야 서로한테 아무런 의미도 없겠다 싶을 때. 그들이 내 마음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 때. 지독한 쓸쓸함에 빠져버리고 만다.
내 자신을 믿는다는 건 유용한 습관이다. 배꼽 아래에서부터 뭔가 묵직하게 올라온다. 다시 한 번 해 보자! 강렬한 에너지가 솟구치기도 한다.
딱 부러지는 방법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어떻게든 자기만의 방법을 만들라고 권하는 것이다. 지쳐 쓰러지는 건 말도 안된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살면서 그 모진 시간들 다 견디고 버티며 지금 여기 이르렀는데. 쉽게 포기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들. 쉽게 살았다는 사람 본 적이 없다. 하나같이 어찌 살았나 싶을 정도로 우여곡절 있더라. 그러니 다시 또 살아야지. 살아내야지.
소설을 쓰든 클래식을 듣든 무슨 작당을 해서라도. 우울하고 슬픈 자신의 멱살을 잡아 뜯어서라도. 우리는 한 걸음 또 나아가야만 한다.
힘든 때가 있다. 괴로울 때도 있다. 심란하고 우울할 때 많다. 사람이니까. 인생이니까.
그럼에도 자빠져 있지는 말자. 궁시렁궁시렁 불평만 쏟아내는 일도 멈추자. 자신에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짓은 이제 그만 두고. 어떤 식으로든 힘 낼 수 있게 파이팅을 외쳐야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