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를 추구하는 문화?
슬로 리딩, 슬로 라이팅
편리한 세상입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불과 몇 년전과 비교해도 많이 달라졌지요. "일일 생활권"이라는 말을 교과서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요즘은 하루만에 몇 개 도시를 돌아다니는 것도 가능해졌으니까요. 빠르고 편리한 세상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겠지요.
궁금한 게 있으면 학교 도서관에 가 보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인터넷을 찾아 보라는 말로 바뀌었지요. 그러다가 지금은 "어떻게 찾아 보라"는 말 자체가 무색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손바닥 안에서 빠르고 쉽게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오후 3시에 시계탑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었지요. 2시 50분쯤 나가서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집으로 전화를 해 보면 나갔다고 하고, 한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는 않고..... 그냥 가자니 금세 올 것 같고, 계속 기다리자니 화가 나고...... 예전에는 약속이란 게 이런 거였지요. 요즘은 어떻습니까? 스마트폰 덕분에 장소 자체는 아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대충 인근에 있으면 통화해서 만나면 그뿐이지요. 참 편하고 쉬운 세상입니다.
접하는 광고마다 "빠르고 쉽다"는 내용을 강조합니다. 어렵고 힘든 인생에서 "빠르고 쉽다"는 말은 오아시스처럼 느껴집니다. 듣기 좋은 말이고, 귀가 팔랑거리긴 하지만 그 실체를 제대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몇 가지 간단한 단계 밟기만 하면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대체로 이런 내용이지요. 사실일까요? 이와 관련해서 저는 두 가지 경험을 했습니다. 첫째, 간단하게 얻은 것은 간단하게 잃었습니다. 둘째, 자세히 보면 뭐 별로 간단하지도 않더라는 사실입니다.
빠르고 쉬운 방법은 '견디는 힘'을 약하게 만듭니다. 인내, 끈기, 여유, 근면, 성실, 꾸준함 등 사람이 갖춰야 할 최선의 태도를 깡그리 없애버립니다. 무슨 일이든 급하게 만들고, 조금만 시간이 걸리면 참지를 못하지요. 뚝배기 국밥은 사라지고 컵라면만 가득한 세상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동전의 양면'이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갑니다. 덕분에 인생 최악의 경험을 한꺼번에 하면서도 버틸 수 있었지요. 감옥이란 곳에서도 배울 게 있었습니다. 막노동 현장에서도 얻는 게 있었고요. 무슨 일이든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가급적이면 내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가야 하겠지요.
빠르고 편리한 세상에서 우리가 얻을 것은 무엇일까요? 정보를 얻고, 학습하고, 사람들과 편하게 만나 소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깊이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조차 빠르고 쉽게 하려는 습성은 반드시 걸러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인생 지킬 수 있습니다.
빠르고 쉬워서 좋은 일이 있는가하면, 땀과 노력을 들여야만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독서와 글쓰기입니다.
빨리 읽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지요. 허나, 빨리 읽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논리는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책에 따라서, 작가에 따라서, 그 내용에 따라서, 읽는 사람에 따라서, 제각각 독서 방법이나 형태가 다릅니다. 빨리 읽을 책도 있고, 일 년 동안 옆구리에 끼고 읽을 책도 있는 법이지요.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초고를 쓸 때는 후다닥 써도 됩니다. 평소에 메모나 낙서를 할 때도 빨리 쓰는 편이 좋겠지요. 하지만, 퇴고를 비롯해서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때도 많습니다. 한 줄 한 줄 정성 담아 수정하고 보완하는 과정에서 성찰도 하고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도 하지요.
빠릿빠릿한 사람도 있고 느릿느릿한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더 좋은가? 질문 자체가 틀렸지요. 중요한 것은,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고, 각자의 개성을 얼마나 발휘하며 살아가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굳이 선택하자면, 저는 충분히 느리게 살고자 합니다. 한 달만에 뚝딱 책쓰기! 그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 10년 동안 매일 글 쓰고 책 읽었지요. 덕분에 무너지지 않는 자이언트 캐슬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조금은 여유를 갖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자빠져 놀라는 뜻이 아니라, 결과에 급급하지 말자는 의미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