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이렇게 사는 거지, 뭐 어때?
갖고 싶은 건 꼭 가져야만 직성이 풀렸다. 일의 측면에서는 제법 좋은 성향이었다. 반드시 끝까지 해내겠다는 근성 덕분에 여기까지 왔으니. 물질적인 측면에서는 최악이다. 필요 여부를 떠나 갖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구입하곤 했으니. 일은 잘 하면서도 돈은 줄줄 새는 바람에 결국 망하고 만 것이다.
문제는, '갖고 싶다'는 마음이 절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사실이다. 미치도록 좋아해서 갖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좋아 보여서' 갖고 싶었다. 쓰고 보니 또 한 번 민망스럽다.
취미가 없다. 게임도 별로고 낚시도 매력없다. 그리는 재주도 없고 찍는 맛도 못 느낀다. 이 나이 되도록 스키장 한 번 제대로 가 본 적 없다. 그나마 자전거를 좀 타긴 하는데, 그것도 푹 빠져 즐기는 정도는 전혀 아니다.
취미가 없으니 휴식도 요원하다. 휴식이란 게 그냥 자는 건줄로만 알고 살았다. 직장 생활할 때, 동료들이 주말에 모여 인라인 스케이트 타는 걸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일주일 내내 고생하며 일해야 하는데, 주말에 저렇게 무리하면 힘들지 않을까? 그들이 말하는 재충전이나 활력이라는 단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에겐 두 가지가 없었다. 애착과 취미. 일상이 흥미롭지 않았고 신나지 않았고 재미가 없었다. 일하다 힘들면 쉬었고, 쉬면서 일 생각을 했고, 그러다 다시 일을 했다. 죽기 살기로 일만 하면서 산 것 같은데, 주말마다 인라인 타는 사람들에 비해 성과가 크게 좋은 것도 아니었다.
취미 한 번 가져 봐라, 뭘 좀 배워 봐라, 같이 한 번 해 보자, 주변 권유를 받을 때마다 정중하게 사양했다. 필요성 느끼지도 못했고, 무엇보다 관심 자체가 없었다. 그럴 시간 있으면 잠이나 한숨 자는 게 낫다 싶었으니까.
감옥에 있을 때, 문득 생각이 나서 적었던 글이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지 않는 철저한 공백의 시간.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상상조차 불가능했던 상실의 세월. 그 안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자신에게 미안했다.
기타를 배우고 싶습니다. 아들과 함께 산에 오르고 싶습니다.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아버지와 낚시도 하고 싶고, 어머니와 바다 구경도 가고 싶습니다. 수영도 배우고 싶고, 스케이트도 타 보고 싶고, 번지 점프도 하고 싶습니다. 다시 살게 된다면, 그 때는 다르게 살아 보고 싶습니다. (-감옥에서 쓴 일기 중에서)
세상으로 돌아와 두 번째 삶을 만났을 때, 이전과는 다르게 애착과 취미를 가지며 행복하게 잘 살았다......로 끝나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나는 예전과 똑같이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사람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애착과 취미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 갖고 싶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고. 취미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 애착 아니라도 사는 데 지장없고, 취미 없어도 별 탈 없고.
나한테 털끝만큼이라도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문제였다는 사실을, 글 쓰면서 알게 되었다.
지독하게 좋아하는 뭔가가 없는 사람도 있는 법이지. 취미 생활 하나쯤 없는 사람도 많을 테지.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도 분명 있을 테니, 그냥 이대로 살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고 보니 난 글 쓰는 걸 유난히 좋아하게 되었다. 틈 나는대로 글을 쓰고 있으니 이 또한 취미라 불러도 되겠다.
쓰고 읽는 것이 일이고, 쓰고 읽는 게 취미이고, 쓰고 읽는 일에 애착을 갖는다. 나름 괜찮네.
그냥 이렇게 사는 거지. 뭐 어때?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