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해
타고나는 거면 재능이다. 배워 익힐 수 있다면 기술이다. 어느 정도는 타고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사실은 나도 그리 생각한다. 9년 9개월째 매일 쓰고 있지만 아직도 헤밍웨이나 하루키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걸 보면, 역시 글 쓰는 유전자가 따로 있긴 한가 보다 아쉬운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연습한다. 쓰고 또 쓴다. 헤밍웨이나 하루키의 글을 따라잡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이은대다운' 글은 내가 제일 잘 쓸 거라는 확신으로.
제법 잘 썼다 싶은 날 있다. 황홀경이다. 십 년 세월 보람 느낀다. 독자들 모습이 그려진다. 아! 글 쓰기를 참 잘했다!
문제는, 그런 날 별로 없다는 거다. 대부분 아쉽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는가. 더 쉬운 말은 없을까. 더 마땅한 예시는 없는 것일까. 작가라는 이름에 걸맞는 표현력과 전달력과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좌절할 때가 훨씬 많다.
글쓰기가 기술이라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세 가지다.
첫째, 공부해야 한다. 지식을 습득하지 않으면 기술을 연마할 수 없다. 글쓰기에 있어 공부란 무엇인가. 남의 글을 읽어야 하고, 글쓰기에 관한 글을 읽어야 하고, 글을 읽으며 문장과 단락을 뜯어봐야 한다. 읽는 행위를 게을리하는 사람은 결코 잘 쓸 수 없다.
둘째, 연습해야 한다. 타고난 꾼들도 매일 연습을 한다. 실력도 경험도 부족한 사람이라면 그들보다 더 땀을 흘려야 한다. 습작이야말로 기술을 향상시키는 최고의 방법이다.
셋째, 끝을 봐야 한다. 글 쓰는 사람은 많지만, 끝까지 쓰는 사람 드물다. 한 편의 글도 반드시 끝까지 써야 하고, 한 권의 책도 꼭 맺음을 해야 한다. 강제성 없는 행위이다. 그래서 스스로 강제해야 한다. 흐물흐물 대충대충. 이래가지고는 결코 좋은 글 쓰지 못한다.
글쓰기는 기술이다. 독특한 속성을 가진 기술이다.
시간이 걸린다. 매번 똑같은 수준으로 써지지 않는다. 읽는 사람에 따라 평가가 다르다. 쓰면서 좋았다가, 쓰면서 울기도 한다. 가장 흐뭇한 일인 동시에 가장 부끄러운 일.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보여주기 싫기도 하고. 사람들이 읽어 봐 주었으면 싶기도 하고 읽지 말았으면 싶기도 하고. 이루고 싶은 꿈이기도 하지만, 매일 때려치우고 싶기도 한.
복잡미묘한 감정이 하루에도 여러 차례 얽히면서, 나는 또 그런 감정조차 글감이 되지 않으려나 궁리를 하는 것이다.
인스타그램에 반복해서 올라오는 광고 피드 몇 개가 눈에 띈다. 무조건 많이 쓴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여기 끝내주는 비법이 있다, 이것만 배우면 글 잘 쓰게 된다, 돈 되는 글을 써라, 글 쓰면 역전한다, 평생 파이프라인 만드는 글을 써라......
글쓰기는 기술이다. 독특한 특성 하나 더 있다. 기술임에 틀림없지만, 그 기술 끝내주게 향상시키는 비법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십 년 글 쓰면서 나 같은 바보도 깨달은 사실인데. 나보다 훨씬 똑똑한 그들이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있나.
글 잘 쓰는 비법? 글쎄다. 내가 바보 아니면 그들이 사기꾼이지 뭐.
별 일 다 겪었다. 별 일 다 견뎠다. 글 쓴 덕분이다. 기술적 측면을 개발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지만, 일취월장하지 못해도 계속 쓰려는 이유다.
눈 감을 때에도 여전히 부족하다 느낄 테지. 완벽하다는 평가보다 수고했다는 한 마디로 웃을 수 있기를. 어쨌든 나는, 한 줄 한 줄 정성을 다해 쓸 작정이니까.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