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내야 하니까
컴퓨터 게임 사업으로 꽤 많은 돈을 벌어들인 친구 L을 만났다. 입고 있는 옷부터 타고 다니는 차까지. 돈 냄새가 물씬 풍겼다. 누가 봐도 부자다.
평화 시장에서 닭똥집과 오징어 튀김을 먹었다. 좁은 시장 골목에 BMW를 세웠더니 차가 더 비싸 보였다. 평화 시장도 많이 변했네 라고 말하는 L에게 네가 더 변했다고, 굳이 말하지 않았다.
함께 일하는 동료와 사이가 틀어졌다고 한다. 기술은 L이 제공했으나 자금은 그 동료가 전부 댔다고. 이제 와서 둘 사이가 틀어졌으니 앞으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고.
근사한 양복에 BMW 몰고 다니는 녀석도 불안해하는구나. 그 때 문득 깨달았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약간의 불안조차 감당하고 있지 않은 사람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을.
불행하다며,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수강생의 전화를 받았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한테서 모진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일흔 넘은 수강생이다. 아들은 마흔이다. 여지껏 장가도 안 가고 집에 붙어 사는데, 결혼하라고 한 마디 했더니 아버지가 자기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냐며 소리를 지르더란다.
자식 하나 보고 살았는데. 이제는 살 맛이 없다면서 한숨을 짓는다. 나도 아들 키우는 애비라 그 심정 충분히 이해는 되었다. 하지만 죽고 싶을 정도인가 싶은 생각도 함께였다.
주변에 자식 잃은 부모 몇 있다. 그들 앞에서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참담한 심정 짐작조차 못하겠다.
자식한테 모진 소리 들은 아버지는 죽고 싶다 하고, 자식 잃은 부모는 한 번만이라도 새끼 얼굴 볼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한다.
나 빼고 다들 잘 사는 것 같지만, 어디서 무얼 하든 각자의 고민과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내 삶에 일어나는 일들이 최악의 불행 같지만, 세상에는 나보다 힘들고 아픈 사연으로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 셀 수 없이 많다.
누구나 조금의 불안을 품고 산다. 아무도 생각만큼 불행하지는 않다.
이 정도 생각만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데 위로가 된다.
혹시 내 입에서 나오는 거친 표현이나 강의 방식 때문에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강의할 때마다, 강의를 마칠 때마다, 불안하다.
사업 실패로 잃어버린 6년.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화려할 수 있었던 나이를 실패와 술로 보내버렸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명치 끝이 저린다.
모두가 조금의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 덕분에 나의 불안이 조금은 덜 불안하다. 나보다 훨씬 불행한 사람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나의 불행이 조금은 덜 불행하게 느껴진다.
별 일 다 생기고, 별 일 다 겪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이라는 하루를 또 살아가야 한다는 것. 살아내야 한다는 것. '삶'이라는 명사보다 '살다'라는 동사에 초점 맞춰야 하는 이유다.
조금 불안해도 괜찮다. 나보다 불행한 사람 도울 수 있어야 한다. 버텨야 하니까. 살아내야 하니까.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