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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맞는 일을 찾는다?

글 쓰면서 글쓰기 고민을 해야지

by 글장이


무엇 하나 진득허니 오래 계속하질 못했다. 회사에 다닐 때에도 처음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시간이 흘러 일이 익숙해지면 슬슬 게을러졌다.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손에 익은 일을 거의 자동으로 하면서 애쓰지 않고 돈 버는 건 좋았고, 그렇다고 열의와 정성 쏟아가며 열심히 하는 건 또 싫었던 것이다.


모든 성과에 대한 공이 나에게로 쏠리는 걸 좋아했다. 선배, 과장, 부장, 상무에 이르기까지 모든 상사들이 이은대를 향해 수고했다 덕분이다 라고 치하하는 바로 그 순간 때문에 일했다고 말할 정도다. 인정과 칭찬 받는 것이 사람 본성이라 하지만, 나는 유독 그 본성이 심한 사람이었다.


품의서 작성해서 결재 올릴 때, 단어 하나 글씨 하나 상사의 입맛에 맞춰야 하는 조직 문화가 싫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적응할 수가 없었다. 그 말이 그 말인데 고치고 또 고쳐야 하니, 시간과 노력과 종이와 프린터기의 낭비가 여간 못마땅한 게 아니었다. 행동하고 결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지, 이깟 서류뭉치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높은 자리 앉아서 손가락만 까딱하는 노친네들 업무 방식에 진절머리가 났다.


이렇듯 직장 생활에 불만이 가득 쌓여 있었으니, 사실은 언제고 사직서를 던졌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거기에 돈 욕심까지 한 몫 더해져서 나는, 딱 이틀 고민하고 십 년 다닌 회사를 그만두었던 거다.


영업을 시작한 초기에 두 가지 좋은 점이 있었다. 첫째, 내가 하는 일에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다. 일하는 방식이나 실적 올리는 노하우를 '가르쳐주는' 선배는 많았지만, 이래라저래라 통제하는 상사는 전혀 없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또 한 가지 좋은 점은, 성과를 내는 만큼 돈을 벌 수 있다는 거였다. 정해진 월급을 받는 것보다 능력껏 수당을 받는 것이 내게는 흥미롭고 설레는 일이었다.


단점도 있었다. 누구도 내 일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 모든 판단과 결정과 선택은 오직 내가 내려야 했고, 그에 따른 책임도 내가 져야 했다. 자유롭다고 생각했던 결정의 권리가 결국은 스트레스로 돌아왔다.


영업 성과가 매달 좋은 것도 아니었다. 수입이 일정치 않으니 계획을 세우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일단 모으고 보자는 임시 방편식 재무 관리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어디서 새는 지도 모르게 돈은 줄줄 빠져나갔고, 실적이 낮은 달에는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에 잠을 이룰 수 없을 지경이었다.


회사에 다닐 때에는 상사와 강제와 업무 방식에 대한 불만 때문에 힘들었다. 자유롭게 영업을 할 때에는 실적과 책임 때문에 스트레스 받았다.


누군가 내게 직장 생활과 프리랜서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묻는다면, 둘 중 무엇을 선택해도 힘들고 어려울 것이며 또 후회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조언할 테다. 그게 사실이니까.


아쉽지 않을 만큼의 고정 급여에 일한 만큼의 수당을 얹어주고, 칭찬과 인정 충분히 해주면서도 무슨 일 생기면 위에서 다 책임져주고, 야근 없이 개인 시간 확보할 수 있는 직업...... 대놓고 말하기 민망하지만, 꿈의 직장이 이런 모습이겠지.


취업하려는 사람들 만나 보면, '나에게 맞는 직업'을 찾으려 한다는 소리 자주 듣는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맞는' 직업을 찾을 것인가. 근무 시간 짧고 월급 엄청 많이 준다는 회사 있다면, 그대로 자신에게 맞는 직업 연연할 것인가.


일한다는 건 어렵고 힘든 과정이다. 자신의 것을 일부 내려놓아야 하고, 타인의 입맛에 다소 맞춰야 하며, 개인과 조직 사이에서 균형도 잡아야 한다. 때로 잠 설칠 때도 있고, 끼니 거를 때도 있고, 휴일을 반납해야 하는 날도 많다.


지금의 나도 다르지 않다. 세상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일 자체만 놓고 보면 할 말이 꽤나 많다. 사람 대하는 일이다.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매달 강의 준비하고, 원고 검토하고, 기획하고, 피드백하고, 의견 충돌에, 뒤통수 치는 인간들까지...... 가끔씩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모든 게 만족스러운 일은 없다. 좋은 점이 있으면 아쉬운 점도 있게 마련. 하나에서 열까지 자기 입맛에 다 맞추려 하면 그냥 집에서 노는 게 낫다. 아니, 집에서 놀기만 하는 사람도 이것저것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 생길 게 뻔하다.


이은대 작가님! 너무 부러워요!

술에 취해 혀까지 꼬인 Y가 밤 11시 넘어 전화를 했다. 사는 게 힘들단다. 직장 때려치우고 나와서 작가와 강연가로 살아보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도대체 자기와 맞는 일이 무엇인지 찾을 수가 없다고.


겉으로 대충 위로하고 끊었다. 어차피 술에 떡이 됐으니 무슨 말을 한들 기억하지 못할 터다. 속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직 고생 덜 했구나.


적성에 맞는 일 찾아 능력을 계발해야 한다 라고, 씨나락 까먹는 말 들으며 자랐다. 다시 말하지만, 자기 적성이 어떤지 알 만한 기회조차 없이 자라는데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일하면 적성이 생긴다. 더 일하면 적성에 맞는다. 맞는 일 찾아 쉽게 하려는 생각 버리고, 일하면서 맞추겠다는 생각으로 덤벼야 한다. 입맛에 똑 떨어지는 그런 일이 세상 천지 어디 있단 말인가. 열 가지 불만 있어도 한 가지 장점 믿고 우직하게 버티는 거지. 소주 한 잔에 시름 날리고 내일 또 달려 보는 거지.


글 쓰면서 글쓰기 고민해야 하고, 살면서 인생 고민해야 하고, 일하면서 일 찾아야 한다. 고민 끝에 쓰겠다는 사람 결국 쓰지 못하고, 고민 끝에 살겠다는 사람 여전히 빌빌거리고, 탱자탱자 놀면서 자신에게 맞는 일 찾겠다는 사람 쭈욱 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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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맞는 일'을 찾고 있는 것인지, '쉽고 편하고 돈 많이 주는 일'을 찾고 있는 것인지.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어야 일도 삶도 좋아질 텐데.


나도 내 일에 대한 아쉬운 점 모두 내려놓고, 오늘 또 힘을 내어 본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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