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잠든 감정을 깨워라
저는 강의할 때 수강생들한테 "감정을 있는 그대로 쓰지 말고 팩트로 대신하라!"고 강조합니다. '어머니가 아파서 내 마음이 아팠다'고 쓰는 것보다, '어머니 기침이 멈추지 않아 내 손이 떨렸다'고 쓰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글을 바꿔 수정한 걸 보면, 감정보다는 팩트를 쓴 글이 훨씬 담백하게 느껴집니다. 수강생들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오늘 포스팅의 제목은 "팩트보다 감정이 먼저"라고 적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아무리 명확한 팩트라도 감정이 일어나지 않은 팩트는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파랗다."는 문장은 쓸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이 다 아는 내용이지요. 아무런 감정이 수반되지 않은 현상 그 자체는 글로써 생명력이 부족합니다. 글 쓰는 작가에게 감정이 없으면, 그 글을 읽는 독자에게도 아무런 감정이 전달되지 못합니다.
인간의 뇌는 어떤 일을 기억할 때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첫째, 특별하거나 평소와 다를 때. 둘째, 감정이 수반될 때. '폰 레스토프 효과'라고 하기도 하고, '행동 조절의 내적 언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건 좀 독특한데 라고 여겨지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놀라거나 감동 받거나, 화가 나거나 배신감 느낄 때, 그런 기억은 의지와 상관없이 오랜 시간 머릿속에 남습니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와 다른 독특한 일이 있으면 글 쓰기가 수월합니다. 감정이 격해지는 일 겪으면, 그 날은 누가 말려도 글을 쓰지요. 글을 쓸 때는 팩트 위주로 쓰는 것을 권하지만, 일단 시작하기 위해서는 '감정'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문제는, 평소와 다른 격한 감정이 자주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기쁘거나 슬픈 일이 매일 매 순간 일어난다면 대부분 사람이 글을 술술 잘 쓸 겁니다. 고요할 때가 더 많고,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날이 더 많으니까 글을 쓰기가 힘든 것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요?
격한 감정을 자주 느끼면 됩니다. 《대통령의 글쓰기》로 잘 알려진 강원국 작가는 이것을 두고 '가짜 감정을 진짜처럼 써야 한다'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없는 감정을 지어내란 뜻이 아닙니다. 무뎌진 감정에 불을 지피란 의미입니다.
아이가 시험 성적을 받아 왔을 때, '잘했구나' 정도로 그치지 말고 '우와! 정말 대단하구나!'라고 표현해야 합니다. 그러면 뇌는 그 상황을 대단히 놀랄 만한 일이라고 여깁니다. 자극을 받는 것이죠. 기억에도 오래 남고 글 쓰기도 수월합니다.
밖에 비가 내린다면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좋을까요? 대부분 어른은 그저 '비가 오는구나' 정도로밖에 생각지 않을 겁니다. 우리 글 쓰는 사람들은 충격파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세상에! 겨울비가 이토록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다니!
아! 빗소리가 클래식보다 낫구나!
겨울비와 커피, 눈물이 날 만큼 그 때가 그리워지는구나!
내가 가진 아픔, 내가 가진 슬픔이 이 비와 함께 씻겨 내려가면 좋겠구나!
사람은 누구나 감정을 품고 살아갑니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감정의 크기를 모두 작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울면 안 돼, 화를 내는 건 좋지 않아,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서 살 수는 없어, 그럴 땐 입을 다무는 게 좋아, 좋다고 들썩거리지 마, 내색하지 마...... 평생 동안 이런 말들을 귀가 따갑도록 듣고 살아온 탓에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마치 저급한 인간이 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 감성 풍부합니다. 음악 만드는 사람들 감성 풍부합니다. 다른 예술하는 사람들 모두 감성이 촉촉합니다. 글 쓰는 사람도 다르지 않습니다. 자기 안에 스며 있는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끄집어내는 연습을 해야 글도 잘 쓸 수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오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어색해 하지 말고, 좋으면 좋다고 하고 싫으면 싫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길 정도로 '감정적'이 되라는 말이 아니라, 자기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와! 대단해! 최고야! 감동적이야! 눈물이 날 것 같아! 심장이 두근거려!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나 지금 크게 소리 지르고 싶어! 이러한 감정 표현의 말들을 자주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감정을 감추고 사니까 삶이 무거워지는 겁니다. 가면을 겹으로 쓸수록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게 마련이니까요.
먼저 감정을 일으킵니다. 그런 다음, 최대한 팩트 위주로 서술합니다. 감정이 수반된 팩트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