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을 가다
"이은대씨! 여기 당신 글이 실렸네!"
평소답지 않은 큰 목소리로 방장이 말했습니다. 뭔 소린가 싶어 고개를 들었더니, 방장은 교도소 간행물을 손에 들어 흔들고 있었습니다.
두 달 전쯤인가 제소자들의 글을 모아 분기별로 간행물을 발행한다는 공고를 보았습니다. 나도 한 번 해 볼까 싶어 어머니에 관한 글을 적었지요. 교정 노트에 빼곡하게 두 페이지를 썼습니다. 어렸을 적 이야기와 수감 생활을 엮어 한 편의 글을 완성하고 제출했습니다.
담벼락 안에서의 생활이란 게 워낙 단순하고 지겨워서 두 달은 2년 처럼 느껴졌습니다. 까맣게 잊을 수밖에 없었지요. 방마다 한 부씩 들여보내 주는 간행물을 방장이 먼저 읽고는, 그 속에서 제 글을 발견한 겁니다.
제 글이 끝난 다음 페이지에는 간단한 평이 달렸습니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문장력만 키우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꿔 말하면, 문장력이 부족하다는 뜻인데, 제 눈에는 '글을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부분만 보였습니다.
절망 속에 살았습니다. 그 안에서 무슨 희망이 있었겠습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매일 책 읽고 글 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게 다 뭐하는 짓인가 싶었거든요. 그 시절의 저는 아무것도 없는 그저 빈 깡통에 불과한 삶을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절망 끝에 발견한 한 줄기 빛은 그야말로 생명수와 같았습니다. 세상에! 내 글이 좋다니! 가능성이 있다니! 그것도 전국 교정시설 간행물을 편집하는 담당자의 평가라니! 같은 방을 쓰던 아홉 명의 수감자들 앞에서 혼자 춤을 췄습니다. 그들의 눈빛도 기억합니다. 우리 방에 작가님 계셨네!
1년 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썼습니다. 그 지옥 같은 곳에서, 형편없는 환경에서, 컴퓨터도 없이 노트와 볼펜만으로, 무려 1년 6개월을 하루 같이, 저는 글을 썼던 것이지요.
그 시절, 저로 하여금 매일 글을 쓰게 만들었던 동력은 '희망'이었습니다.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전문가(?)의 한 줄. 그것이 저를 다시 살게 만들었습니다.
만약 제가 간행물에 기고를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감옥에 갇힌 신세로 글은 무슨 글이야. 이런 생각으로 망설이고 주저했더라면 아마 저는 일찌감치 글쓰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제 삶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갔을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습니다.
<좋은 생각>, <쉼터> 등 기고할 만한 곳 천지고요.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 자신의 글을 세상 사람들한테 보여 줄 플랫폼도 넘치도록 많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써서 마음껏 공유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감추고 싶은 비밀, 아물지 않은 상처, 다른 사람을 향한 분노 등 차마 쓰지 못할 것 같은 그런 이야기도 많겠지요. 이런 경우에는 아무도 함부로 써라 말아라 얘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디 그런 이야기뿐이겠습니까. 수십 년 살아온 인생입니다. 쓸 수 있는 이야기도 얼마든지 많을 겁니다.
우선은 쓸 수 있는 이야기부터 써 보는 것이지요. 차음 필력을 키우고 문장력을 갖춘 다음에 마음 속 응어리를 풀어내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쓰기 시작하는 용기입니다.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첫째, 글을 써서 공유한다고 해서 남들로부터 칭찬과 인정만 받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모두 생각과 경험과 가치관이 다릅니다. 보는 눈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각자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내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마땅찮게 여기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겁니다. 평가받는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그저 공유 자체에 의미를 두어야 합니다.
둘째, 겸손해야 합니다. 특히 초보 작가인 경우 조금만 건방을 떨어도 독자들의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잘났다 못났다 점수 매기를 글 쓰지 말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있는 그대로 덤덤하게 쓰는 습관을 키워야 합니다.
셋째, 글쓰기로 인생 역전 하겠다는 생각 접었으면 좋겠습니다. 글쓰기는 시합이 아닙니다. 지금 누구한테 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닌데 역전은 무슨 역전입니까. 너도 쓰고 나도 쓰는 거지요. 그냥 쓰는 겁니다. 돈, 성공, 베스트셀러...... 어휴, 듣기만 해도 짜증납니다. 그냥 씁시다. 나랑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힘 좀 실어 주는 맛으로, 행복하게 썼으면 좋겠습니다.
넷째, 마지막으로 갈수록 더 많은 정성을 쏟는 글이면 좋겠습니다. 초보 작가의 글을 읽어 보면, 많은 경우 마무리가 급합니다. 처음과 중간 부분은 제법 잘 썼으면서도, 마지막으로 가면 마치 어디 불이 난 것처럼 뜬금없이 끝나 버립니다. 마음이 조급해서 그렇습니다. 빨리 끝내는 데에만 정신이 팔린 탓입니다.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 싶으면, 잠시 손을 놓고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지금부터가 진짜다 집중하고 정성 쏟아야 합니다. 마무리가 예뻐야 글이 좋습니다.
다섯째, 어떤 매체에 기고를 하거나 플랫폼에 글을 공유했을 때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정을 미리 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대는 항상 실망과 좌절을 가져 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결과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습니다. 승부를 걸자는 게 아니라, 글 쓰는 삶을 시작해 보자는 의미입니다. 별 것도 아닌 일로 상처받고 흔들릴 필요 없지요. 해 보고, 안 되면 또 하고, 그래도 안 되면 다시 하고!
후일담이 있습니다. 당시, 교정 본부 간행물 수기 공모전에는 접수 인원이 미달이었습니다. 제 글이 좋든 나쁘든 실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문장력만 좀 키우면'이라는 토를 달은 모양입니다.
일반적인 경우에, 이런 후일담을 듣게 되면 맥이 탁 풀리고 기분도 엉망이 될 텐데요. 저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저는 그 후로 매일 글을 쓸 수가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자신에게 도움되는 쪽으로 해석하기만 하면 됩니다. 내가 좋았다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세상은 세상 대로 평가하라고 두세요. 우리는 우리 길 갑시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