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에 힘을 실으려면
살다 보면 마음이 심란할 때가 있습니다. 일상에서도 허다하겠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오래 전 막노동을 하던 시절이 특히 그러했지요. 마음이 심란하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사람 관계도 시원찮고요.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심란한 마음도 감정의 일종이라 무조건 없애거나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매번 마음 심란할 때마다 일상에 지장을 받는 것도 못할 짓이죠.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예민한 사람일수록 심란한 정도가 큽니다. 작은 일에 상처받기도 하고, 불투명한 앞날에 대해 걱정하기도 하고, 지난 과거에 발목 잡혀 우울한 생각을 계속하기도 합니다.
아침 6시 30분, 인력사무소 앞에 도착했습니다. 셔츠를 두 장이나 껴입고 두터운 점퍼까지 감싸도 몸이 부들부들 떨릴 만큼 추운 날씨였습니다. 하늘도 흐려서 금방이라도 눈이나 비가 쏟아질 것만 같았지요. 아직 동이 트지 않아 캄캄했고, 빈 페인트통에다 불을 지펴 놓고 삼삼오오 일꾼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운 좋게도 금방 일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가까운 공사 현장에서 벽돌과 모래를 나르는 일이었지요. 시작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는 일당을 10만 원 받습니다. 그날따라 9만 원 준다고 합니다. 인력사무소에 1만 원 떼 주고 나면 집에는 8만 원밖에 가져갈 수 없습니다. 그래도 일거리가 없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해야 했습니다.
현장에 도착하니 부슬부슬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공사장에 비가 내리면 일단 안전 점검부터 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업체 담당자는 막무가내로 일부터 시작하라고 했습니다. 싫으면 가라, 배짱을 부리는 거였죠. 저 같은 잡부는 그냥 집에 가라는 소리가 가장 무섭습니다. 입 꾹 다물고 삽으로 모래를 퍼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세 시간쯤 지났을 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벽돌과 모래는 물에 젖으면 그 무게가 말도 못하게 무거워집니다. 계속 퍼 날라야 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무거워지니까 힘도 두 배로 드는 것이죠. 경력이 좀 된 일꾼들이 업체를 상대로 항의를 했습니다.
일꾼들은 이대로 계속할 수 없으니 잠시 쉬게 해 달라고 요청했고, 업체는 약속된 하루 분량의 일을 마치지 못하면 일당을 줄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현장에서는 여러가지 일이 생기게 마련이지만, 그날만큼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리는 업체는 처음이었습니다.
급기야는 일꾼들과 업체측이 싸움을 벌이기까지 했습니다. 일을 시키는 쪽과 못 하겠다는 쪽. 돈을 받겠다는 쪽과 못 주겠다는 쪽. 그리고 한쪽에는 저 처럼 몇만 원이 간절한 잡역부들까지. 현장은 그야말로 엉망이 되어 버렸지요.
우리 잡부들은 그냥 일을 했습니다. 비 맞아가며, 더 무거워진 벽돌과 모래를 퍼 나르며, 군소리 하지 않고, 묵묵히 약속한 양을 해냈습니다. 무엇이 정당한가? 당시 제게는 하루치 일과 일당 외에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원칙도, 약자를 위한 정의도, 제 가족 생계를 위한 일당과는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일당 적은 것도 알고 시작했습니다. 비가 내릴 거란 사실도 알았습니다. 벽돌과 모래 나르는 일이란 사실도 알았습니다. 업체가 아무리 고집을 부린다 해도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일꾼들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억지를 부리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뭐라도 트집을 잡아 일당을 더 많이 받아내려는 몇몇 일꾼들이 더 문제였지요.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날씨는 아무 때나 흐립니다. 비도 막 쏟아집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시비가 붙습니다. 싸움이 납니다. 어깨는 점점 더 무거워집니다. 힘은 들고, 상황은 최악이고, 몸과 마음은 지칩니다.
사람 사는 곳에는 항상 문제가 발생합니다. 미처 몰랐다는 말이 핑계나 변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마음은 심란하고 복잡해집니다. 갈수록 더 힘들어질 때가 많습니다. 딱히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곧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당함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잘못된 걸 바로잡아야 합니다. 분연히 일어나 깃발을 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정의 실현 가운데에서도 내가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이 펼쳐져도 벽돌과 모래는 계속 날라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인생과 세상 모두를 지키는 일입니다.
불합리하다는 이유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그것도 습관이 됩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불합리성을 강조하게 되지요. 할 일은 하지 않으면서 세상과 사회의 잘못된 점만 지적합니다. 자신이 지적하는 세상이나 자신의 모습이나 다를 바가 하나도 없는데 말이죠.
내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 의지 대로 척척 돌아가는 인생은 없습니다. 모든 일은 그저 일어납니다. 모든 일은 나에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부정하고 거부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냥 일어나는 것이죠.
외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불평과 불만을 터트려 봐야 아무 소용 없습니다. 정의를 지키려는 노력을 하는 것도 마땅하지만, 반드시 자신이 해야 할 몫을 다 해야 합니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벽돌을 날라야 하고, 싸움이 일어나도 모래를 퍼 날라야 합니다. 할 일을 하면서 싸워야 합니다. 할 일을 하면서 할 말도 해야 합니다.
마음 심란한 것은 감정의 일종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심란할 때 하더라도 주어진 몫의 하루에 최선을 다 하면서 심란해야 합니다. 할 일 하면서 속상해야지요. 할 일 하면서 바빠야 합니다. 할 일 하면서 투덜거려야 하고, 할 일 하면서 성질 부려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나의 말에 힘이 실립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