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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빼고 글 쓰기

초보 작가 즐기기

by 글장이


두 번째 책을 쓸 때, 첫 책을 쓸 때보다 좀 더 긴장을 했습니다. 저의 첫 책을 읽은 독자들이 두 번째 책을 '기대'할 거란 생각 때문에 부담스러웠습니다. 같은 이유로, 세 번째 책을 쓸 때는 두 번째 책을 쓸 때보다 훨씬 더 심리적 압박이 심했습니다.


첫 책을 쓸 때는 '그냥' 썼습니다. 천지도 몰랐으니까요. 그저 나의 경험을 세상에 전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장력은 아예 생각지도 못했고, 구성과 문맥도 엉성했습니다. 출판사와 계약 후 편집자의 요청대로 하나씩 수정하면서 겨우 읽을 만한 수준으로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독자들 반응이 좋았습니다. 기분 좋았지요. 그토록 바라던 작가가 되었구나! 기쁨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쁨과 희열도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두 번째 책을 썼는데요. 첫 책과는 시작부터 느낌이 달랐습니다.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볼링을 치러 간 적 있습니다. 배운 적도 없었습니다. 그날이 제 평생 볼링을 처음 친 날입니다. 정확한 점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150점 가까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같은 편 친구들은 환호를 질렀고, 상대편 친구들은 제가 볼링을 처음 치는 게 아닐 거라고 빈정대기까지 했습니다.


그 후로는 어땠을까요? 다시는 볼링장 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망신만 당했습니다. 스텝은 꼬이기만 했고, '또랑'으로 빠지기 일쑤였지요. 지난 번에 처음 칠 때는 분명 점수가 잘 나왔는데, 경험이 쌓일수록 점점 더 엉망이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공을 굴릴 때는 어깨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마음에 부담도 전혀 없었고요. 그저 친구들과 즐긴다는 생각으로 신나게 핀을 향해 공을 굴렸을 뿐입니다. 하지만, 몇 차례 볼링장을 찾게 되니까 기본 동작부터 하나하나 익히게 되더군요. 뭘 좀 알고 나니까 어깨에 힘이 팍팍 들어갔던 겁니다. 점수가 형편없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직장 생활 처음 시작했을 때, 저는 출근 자체가 즐거웠습니다. 모두가 저를 좋아하고, 일도 할 만했거든요. 그런데, 몇 달 지나고 나서부터 회사에 가기가 싫었습니다. 상사도 못마땅하고, 동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회사 생활을 할 때는 만나는 사람마다 깍듯하게 인사했고, 주어진 일마다 기꺼운 마음으로 처리했습니다. 누가 도와달라고 하면 웃으며 도와주었고, 야근이라도 하게 될 때면 팔 걷어붙이고 앞장서서 일했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속셈'을 읽게 되었습니다. 싹싹하고 착하게 구는 저한테 일을 몰아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굳이 제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몽땅 저한테 맡기는 듯했지요. 슬슬 짜증도 나고, 나를 물로 보는 건가 싶기도 했습니다. 직장 생활 돌아가는 생리를 좀 알고 나니까 저도 이기적인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즐겁지 않았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는 분들에게 꼭 전하고 싶습니다. 어깨에 힘을 빼고,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한 번 써 보라고 말이죠.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초보 작가' 시절입니다. 책 한 권 내고 나면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어깨는 더 무거워지고 부담도 커지며 지켜보는 독자들 눈도 두려워질 겁니다.


그럼에도,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전문가'가 되려고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글을 써 본 적도 없고, 책을 출판한 적도 없으면서, 마치 자신이 대단히 글을 잘 쓰는 기성 작가인 것처럼 폼을 잡는 것이죠. 독자들 눈에 우습게 보이는 건 두 번째 문제이고, 우선 작가 스스로 엄청난 강박과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잘 쓰지 못하는 자신과 폼 잡는 작가의 모습 사이에서 무엇이 진실인가 판단하지도 못한 채 꿈을 꾸듯 글을 씁니다. 실제 글은 형편없는데 마음은 벌써 박경리 선생이 되어 있으니, 그 엄청난 간극을 이기지 못해 실망하고 좌절합니다.


'시작'하는 단계임을 인정하면 자유로와집니다. '초보 작가'임을 받아들이면 가벼워집니다. 누구도 우리에게 글을 멋지게 잘 써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아무도 부담을 주지 않는데 혼자서만 짐을 지고 살아가는 건 참 바보스러운 일이지요.


초보 작가님들과 대화를 나눠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생각만큼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자기만의 색깔을 고집하고 싶다, 돈이 되는 콘텐츠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중이다...... 나름의 고민을 하소연하는데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공중에 동동 떠다니지 말고 속히 땅으로 내려와 두 발을 땅에 견고하게 딛고 글 쓰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초보 작가입니다. 생각만큼 글이 잘 써지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요? 자기만의 색깔이라고요? 대체 글을 얼마나 많이 썼길래 벌써부터 자기만의 색깔을 운운하는 건가요.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태도지요. 돈이 되는 콘텐츠 아이디어? 어디서 누구한테 무슨 말을 들은 겁니까? 본인조차 명확하게 해석하지 못하는 어려운 용어까지 써 가며 똥품을 잡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요!


지금은 글을 잘 쓰려고 노력할 때가 아닙니다. 글을 쓴다는 게 어떤 것인지 제대로 느껴야 할 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연애편지 한 통 쓰려면 밤을 꼬박 새우지 않습니까? 문장은 엉망일지라도 온 정성을 다 쏟아부은 글. 초보 작가는 그런 글을 써야 합니다.


벌써부터 타인의 인정과 칭찬을 바라고 멋이 잔뜩 들어간 글을 쓰면, 앞으로 진실하고 참된 글을 쓰기는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잘 써야 할 때가 아니라 즐길 때입니다. 폼 잡을 때가 아니라, 그저 즐긴다는 마음으로 공을 굴려야 합니다. 초보 작가일 때가 신나게 쓸 수 있는 마지막 시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초보 작가라서 주춤할 게 아니라, 초보 작가라서 당당할 수 있는 것이죠. 누가 뭐라고 하면 초보 작가라고 하면 됩니다. 블로그에 글 한 편 올릴 때도 마지막에 '글쓰기 연습중'이라고 꼭 적어 두세요. 초보자가 연습중이라는데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도로에서 제일 무서운 표시가 초보 운전입니다.


잘하고 싶은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잘 쓰고 싶은 심정도 누구보다 잘 압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고 시간이 걸립니다. 쓰고 싶다고 해서 갑자기 확 잘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배우고 공부하고 노력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공을 들여야 결실을 맺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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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고 싶다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글을 잘 쓰기 위한 노력을 매일 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세상이 이런 곳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뚜렷하게 알 수 있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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