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을 걷다, 나무에게서 배우다
바쁜 일상을 떠나
잠시 휴식을 취하러 온 제주.
저의 의도에 딱 맞는
제주 비자림 숲길에 다녀왔습니다.
제주도에 다섯 번쯤 왔는데,
올 때마다 빼놓지 않고
꼭 들르는 곳입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테지요.
마음이 차분해지는 곳입니다.
비자 나무가 군집을 이루고
그 사이로 산책로가 나 있습니다.
성수기가 아닌 덕분에
관광객도 적어서
새소리 즐기며
느긋하게 걸었습니다.
딱 지금처럼
이렇게 살고싶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길 양쪽에 줄지어 선
비자나무 가지들이
가운데로 모여
터널을 만들었습니다.
가지와 잎 사이로
햇빛이 부서집니다.
코로 숨을 가득 들이마셨다가
입으로 후 하고 길게 내뿜습니다.
뻣속까지 맑아지는 느낌입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제멋대로 뻗어 나가 있지만
그 모양이 얼마나 웅장하고 신비로운지
한참을 서서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나무를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삶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가득해서
잠시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살 적에
나무의 침묵을 만났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주는데
너는 왜 감사할 줄 모르는가
본전생각에 힘들 때
나무의 조건없는 베풂을 보았지요.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런 고난과 시련 만나는지
억울하고 분했을 때
잠시도 쉬지 않고
평생을 묵묵히 살아가는
나무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나무는 제 삶의 동경이자
멘토가 된 것이지요.
비자림 숲 한가운데
"새천년 비자나무"가
위엄을 갖추고 서 있습니다.
800년......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가슴 속에서
뜨거운 뭔가가 치솟기도 했습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오랜 세월 같은 자리에 서서
얼마나 많고 모진 비바람을
견디고 또 견뎌냈을까요.
시간, 바로 그 시간이
비자나무 앞에서
무한히 작아지는 이유입니다.
이번 제주여행에서
딱 한 가지만 남기라면
결코 굴하지 않는 정신력을
꼽는 것이 마땅하겠지요.
시간의 권위
그 앞에서는
무엇도 초월할 수 없습니다.
느리게
더 느리게
그러나
결코 멈추지 않는 인생.
제주 비자림은
시간의 권위를 가장 잘 보여준
제 스승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