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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조립하기

미리, 틈날 때마다

by 글장이


오래 전, 막노동을 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아침 7시쯤 시작해서 저녁 6시쯤 마무리했습니다. 장갑을 벗고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일꾼들이 한 곳으로 모이고 있었습니다. 업체 사장도 수고했다는 인사까지 했고, 이제 집에 가기만 하면 되는데 대체 무엇 때문에 다시 모이는가 궁금했지요.


철근은 한쪽에 모아 쌓고, 모래에는 비닐을 덮고, 사용했던 연장들은 전부 씻어서 창고 안에 넣고...... 내일 다시 와서 일해야 하는데 굳이 이렇게 정리를 철저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뒷정리가 깔끔해야 한다, 뭐 이 정도는 누구나 아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만 있다가 다시 작업을 해야 하니 그냥 좀 둬도 될 일 아닌가 생각했던 것이지요.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일을 마친 후 깔끔하게 정돈을 하는 것에는 뒷처리나 청소 외에 다른 이유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것은 '내일 다시 일을 할 때 허둥거리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하고, 시작과 끝을 분명하게 하고, 준비 없이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끝 작업이었던 겁니다.


직장에 다니던 시절에 보고서를 참 많이도 썼습니다. 보고서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항목들이 있었지요. 배경, 취지, 대상, 교육 목표, 예상 성과, 기존 교육과의 차이점......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다고 보고서를 잘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씩 작업해야 합니다.


차를 마시다가도 '배경'에 쓸 내용을 떠올리고, 대화를 하다가도 '취지'를 메모하고, 출근길에도 '대상과 목표'를 정리합니다. 틈날 때마다 항목별로 어떤 내용을 작성할지 구상을 해두는 것이죠.


보고서를 작성해야 할 때가 되면, 그 동안 구상해 둔 항목들을 모아 이어붙이기만 하면 됩니다. 보고서를 써야 한다는 강박이나 스트레스 거의 없었습니다. 그냥 오며 가며 항목 하나씩 준비했기 때문에 보고서 자체는 큰일이 아니었습니다.


글을 쓰려는 사람 중에는 책상 앞에 앉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쫘악 시도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A4 용지 1.5매는 결코 만만한 양이 아닙니다. 글쓰기 경험도 부족한 사람이 어떻게 일필휘지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주제를 정하고, 어떤 내용으로 채울 것인가 소주제 몇 개를 정리합니다. 그런 다음, 소주제마다 짧은 글 한 편씩을 쓰는 것이죠. 수시로 메모하고 기록했다가, 글을 쓰는 시간이 되면 연결하고 이어붙여 다듬기만 하면 됩니다.


미리 하면 쉽습니다. 조금씩 하면 수월합니다. 틈날 때마다 하면 스트레스도 줄어듭니다. 힘들다 어렵다 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방법으로만 쓰려고 하면 더 괴롭겠지요.


작가는 글을 쓰지 않을 때조차 글을 쓰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평소 일상 생활을 하면서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을 적어 두고,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과 연결하여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한 번에 쓰려고 하면 어렵습니다. 힘듭니다. 글 잘 쓰는 작가들도 다 메모하고 낙서하고 스케치합니다. 미리 준비하는 것이죠. 조금씩 써 둡니다. 틈새 시간을 이용합니다.


제 블로그에는 2023년 2월 현재 5,600건의 포스팅이 있습니다. 책 한 권 쓰기 위해서는 약 40편의 글이 필요하지요. 블로그 열어서 한 편씩 읽으며 골라내기만 해도 책 몇 권은 금새 쓸 수 있을 겁니다.


매일 일기를 씁니다. 5년째입니다. 일 년이 365일이니까, 지난 4년치 일기만 해도 1,460편 됩니다. 일기장에서 글 40여개만 뽑아내도 책 한 권 쓸 수 있다는 얘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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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쓰면 잘 쓸 수 있습니다. 틈날 때마다 써두면 쓰기가 한결 수월합니다. 그냥 한 줄 적는 거지요. 자기 전에 세 줄 쓰는 겁니다. 글이 글을 불러옵니다. 머리 아픈 사람은 글 못 씁니다. 손이 아파야 글을 잘 쓸 수 있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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