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하게, 솔직하게
K는 화가 났다. 볼 수 없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그의 숨소리가 들렸다. 화가 난 게 틀림없었다. 나는 아직 K의 이름을 모른다. 밑도 끝도 없이 전화가 왔다. 그러고는 대뜸 묻는다.
"팔리는 책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디선가 내 얘기를 들었나 보다. 사업에 망했는지 도박으로 돈을 날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돈이 급한 게 틀림없었다. 그렇게 돈이 급하면 다른 일을 하라고 권했다. 나는 팔리는 책 쓰는 법 따위 모른다고, 정중하게 대답했다.
"등록하면 가르쳐 줍니까? 그럼 등록할게요!"
말투가 거칠어졌다. 예전 같았으면 맞받아 화를 냈을 터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지금 이 사람, 마음이 정상이 아니다. 조급하고 초조하다. 물 불 가리지 않는다. 그 심정을, 내가 잘 안다.
등록 여부를 떠나 나는 정말로 그런 걸 모른다고 좋은 말로 설명했다. 듣지 않았다. 앞으로 3개월 내에 돈이 되는 책을 써야만 한다고,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알아듣지 못할 말만 늘어놓았다. 이쯤 되니 내 전화번호를 알려준 사람에게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만 끊겠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집 근처로 찾아오겠다고 한다. 대구에 산다고 했더니 당황하는 눈치다. 서울에 사는 줄 알았나 보다. 아까와는 달리 목소리가 애절해진다. 제발 좀 알려달란다. 은혜는 꼭 갚겠다고, 한 번만 살려달라고.
이 사람, 한 동안 절망적인 시간을 보내야 한다. 눈에 선하다. 그의 앞날이 당분간 어떻게 펼쳐질지 뻔하다. 고통스러울 테다. 술도 퍼마시겠지. 여기저기 거짓말을 하면서 돈을 빌릴지도 모른다. 그러다 결국은......
위기와 시련은 언제 닥칠지 아무도 모른다. 저축을 하고 보험을 들고 나름의 준비를 하지만, 막상 고난이 눈앞에 닥치면 뵈는 게 없다. 그럭저럭 평범한 일상을 보낼 때는 어떤 상황에 대한 처신을 잘할 수 있을 것처럼 느낀다. 착각이다. 사람은 절대 그럴 수 없다. 냉정함을 잃고 만다. 흔들린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딱 하나만 해결하면 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절대 그럴 수는 없다. 일단 댐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 하나 둘 페인트칠을 하는 걸로 막기 힘들다. 결국은 무너지고 만다. 숨이 콱 막힐 것이다.
모질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추락했을 땐 바닥을 찍는 게 좋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 보면 더 많은 걸 안고 추락하게 된다. 떨어지는 속도만 빨라지고, 내 몸과 마음의 충격만 더할 뿐이다.
알고 싶다. 돈이 되는 글쓰기란 무엇일까? 그런 게 정말로 있기나 한 것일까? 말을 참 잘도 만들어낸다 싶다. 돈이 되는 글쓰기라니. 듣기만 해도 귀가 솔깃하다. 불과 일곱 글자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별로 어렵지 않게 몇 줄 술술 쓰기만 하면 통장에 돈이 마구 쏟아져 들어온다"는 의미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들린다. 현혹이다. 귀가 팔랑거린다.
사업 실패하고 재산을 모두 날렸을 때, 대출 전화에 모조리 속고 말았다. 은행에서 분명히 안 된다고 했는데도 무조건 빌려줄 수 있다고 나를 꼬득였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당장 눈앞의 불을 끌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 한 푼 갚지 못했다. 천문학적인 이자다. 감당하지 못한다. 나중의 일이라 어떻게든 될 것 같지만, 결국은 패가망신한다. 혼자만 망할 일을 온집안 거덜낸다.
일생에 한 번은 위기를 맞는다. 예외없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아직도 정답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꼭 한 가지 말해 주고 싶은 게 있다.
다른 사람 말에 귀 열지 말아야 한다. K는 아마도 어디선가 돈 되는 글쓰기라는 말을 들었을 터다. 수소문해서 나를 찾았을 테고. 존재하지 않는 허깨비를 찾아 도움을 청하느라 아까운 시간 다 날리고 있는 셈이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문제를 직시하고 자신의 상황을 냉정하게 받아들인다면, 어쩌면 아주 조금이라도 해결이 수월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온라인 세상이다. 귀를 닫고 있어도 눈에 들어온다. 온갖 달콤한 광고와 문구들이 사람을 가만두지 않는다. 결국은 지갑을 열게 하고, 결국은 마음을 빼앗기게 하고, 결국은 자기 합리화를 하게 만든다. 말과 글과 실체가 다른, 모두 사기나 다름없다. 눈이 가거든 피해야 한다. 귀가 팔랑거리거든 콱 막아야 한다. 차라리 눈 감고 귀 막고 사는 편이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돈이 되는 글쓰기? 글쎄다. 그런 게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만 모를 수도 있겠지. 10년 넘게 매일 글을 쓰고, 개인 저서 일곱 권을 출간하고, 536명 작가를 배출하고, 매일 책을 읽고 글쓰기 공부를 하는, 나만 모를 수도 있을 테지.
무조건 역행한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다. 악인이 되어야만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말과 글에 눈과 귀를 빼앗기는 태도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돈과 성공에 목이 마를수록 헛것이 보이게 마련이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정신 똑바로 차려라!"이다.
큰 실패 겪어 봤다. 목숨 걸고 재기도 해 봤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는 무엇보다 자신을 믿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지금처럼 일상이 녹녹할 때 "자신을 믿을 만한 존재로 갈고 닦아야" 한다.
지금 당장 보험 영업을 한다고 하면, 당신 입에서는 어떤 말이 나오겠는가? 당연히 보험에 관한 좋은 말만 쏟아질 것이다. 당신이 지금 네트워트 영업을 하고 있다면, 당연히 판매하는 상품에 대한 칭찬이 넘쳐날 테고. 너무나 뻔한 일 아닌가.
지금이 어떤 세상인가. 일주일만에 책을 쓰고, 책을 쓰기만 하면 수억을 벌고, 비트코인으로 부자가 되고, chat GPT로 인생을 역전하는 세상이다. 이게 정말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이 모든 것들 뒤에 어떤 단점은 없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일주일, 수억, 부자, 인생 역전...... 왜 다들 좋은 말만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실패한 적 있다. 처참했다. 아프고 힘들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말도 못한다. 죽을려고 작정하고 별짓을 다 해 봤다.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나와 같은 상황을 겪는 이가 단 한 명도 없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살아남은 이유 중 하나다.
힘들면 차라리 주저앉아 울어버리는 게 낫다. 자존심? 그딴 거 필요없다. 우리 안에는 약한 존재가 있다. 솔직해야 한다. 강한 척 모른 척 해 봐야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 해결하기 위해 발버둥치지 말고, 지금의 상황을 똑바로 쳐다보는 냉철함이 필요하다.
돈 되는 글쓰기? 왜 나만 모르는 걸까? 돈 되는 글을 쓰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 나만 피하고 있는 걸까? 잡히면 죽는다 진짜.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