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를 위한, 독자를 배려하는
묘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장면이나 풍경을 글로 쓸 때 '눈에 보이듯이'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일컫는 말이죠. 묘사를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을 듣고 있으면, 글을 읽고 있으면, 마치 내 눈앞에 그 장면이나 풍경이 보이는 듯합니다. 흔히 '보여주는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도 있고요.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는 한 번 딱 보여주는 게 최고지요.
팀장한테 아침부터 혼이 났다. 지난 주말에 결재 올린 기획서 때문이었다. 나는 한다고 했는데, 팀장의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다른 직원들 보는 앞에서 망신을 주니 나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부터 엉망이다. 이번 주도 예감이 좋지 않다.
위 글은 대표적인 설명문입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작가의 설명을 듣고 짐작할 뿐입니다. 짐작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독자가 일일이 추측하고 상상하고 풀어내야 합니다. 반면, 보여주는 글은 어떤지 아래 예시를 살펴보겠습니다.
"어이, 김대리! 이리 좀 와 봐!" 월요일 아침 출근해서 사무실 문을 열기 무섭게 팀장이 불렀다. 자리에 가방을 던져놓고 얼른 팀장 앞으로 갔다. "이걸 기획서라고 제출한 거냐! 당장 다시 해 와!" A4 용지에 작성한 서류가 허공에 흩어졌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팀장의 일갈, 그리고 흩어지는 서류 뭉치들. 스무 명이 넘는 직원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본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허리를 숙여 기획서를 한 장씩 주웠다. 내 얼굴이 바닥에 닿을 정도가 되자 굴욕감이 느껴졌다.
화가 났을 때 화가 났다고 쓰면 설명문이 됩니다. 문을 발로 쾅 찼다,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손이 부르르 떨렸다, 리모컨을 집어던졌다 등 자신의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면 보여주는 글이 됩니다.
초보 작가의 경우, 특히 감정을 설명하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게 되는데요. 화가 났다, 짜증난다, 속상했다, 기뻤다, 슬펐다, 행복했다, 불행했다, 기분 좋았다, 우울했다...... 물론, 이렇게 감정을 직접 드러내는 표현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모든 감정을 이렇게 쓰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짜증난다'는 표현을 살펴보겠습니다. 짜증이 나면 말투는 어떻게 달라지나요? 어떤 행동을 합니까? 마주하고 있는 상대방에게 어떤 말을 합니까? 이 모든 것들이 때와 장소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짜증난다'라는 말에 익숙해지면 아무 때나 짜증난다고만 쓰게 될 겁니다. 참 편리하지요. 그러나 독자들은 단순하고 의미없는 글이라 여기게 될 테지요.
'아내와 싸웠다'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싸움의 단초는 무엇인지, 나는 어떤 식으로 반응했는지, 그리고 아내는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 그때 아이는 무얼 하고 있었는지, 싸운 장소는 어디인지, 후폭풍은 어땠는지, 지금은 또 어떤지......
글을 이런 식으로 쓰면 분량이 부족하다는 말은 결코 나오지 않을 겁니다. 제 글을 읽는 사람 중에는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다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정보 위주의 SNS를 작성하는 것과 하나의 주제를 갖고 글을 쓰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독자가 상황 속으로 빨려들어와야 공감도 하고 나름의 생각도 할 수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쓰는 모든 상황과 내용이 주제와 맥이 통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얘기지요.
보여주는 글쓰기 연습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것은 일기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일기를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만 씁니다. "오늘 무엇을 했다, 내 기분이 이러했다."
여기다가 '구체적인 상황이나 사건, 환경 등을 묘사하는' 글을 추가해 보십시오. 별 것 아니라 여겼던 자신의 하루에 빛이 나기 시작할 겁니다.
사람의 감정은 복잡미묘합니다. 생각도 단순하지 않습니다. 똑같은 사건이 일어나도 말과 행동과 표정이 다릅니다. 글을 읽는 것은 타인의 삶을 엿보는 것과 같습니다. 참고하고 공감하고 배우고, 그래서 내 생각의 범주를 넓히고 더 나은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이죠. 이런 차원에서, 작가라면 자신이 쓰고자 하는 주제와 경험을 '더 잘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보여주는 글'을 쓰는 습관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꾸준하게 글 쓰고 연습하고 반복해야 합니다. 쉬운 길 아니지만, 그렇게 훈련해서 어느 정도 쓸 수 있게 되면 글쓰기 자신감도 붙고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