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었다는 말
"글을 쓰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습니다. 저는 너무 바쁘거든요. 지난 주말에는 꼭 글을 쓰려고 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쓰러져버렸어요. 쓰려고 했지만 도저히 쓸 수가 없었어요."
그렇군요, 어쩔 수 없었군요.
"저는 아이가 셋입니다. 뭘 좀 하려고 하면 아이들이 칭얼대서 도저히 할 수가 없어요. 아이들이 모두 자는 밤이 되면 겨우 혼자만의 시간을 갖지만, 그나마도 눈꺼풀이 저절로 감겨 오래 앉아 있질 못해요. 저도 작가가 되고 싶지만 상황이 받쳐주질 않아요."
그렇군요, 어쩔 수 없었군요.
"평일에는 회사에 나갑니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집에 옵니다. 야근도 많고 회식도 잦습니다. 도무지 틈이 없어요. 주말요? 주말에는 쉬어야지요. 안 그러면 전 아마 쓰러지 말 겁니다. 글 쓰고 싶지만, 그럴려면 회사를 때려치워야 할 겁니다."
그렇군요, 어쩔 수 없었군요.
"머리가 아파서, 집중이 되질 않아서, 나이가 많아서, 나이가 어려서, 주제 선정하기가 어려워서,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서,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글을 잘 쓰지 못해서...... 쓰고 싶지만 쓸 수가 없었어요."
그렇군요, 어쩔 수 없었군요.
"다른 사람들이 제 글을 보고 뭐라고 할까 봐 두려워요. 글솜씨도 별로이고, 내용도 지극히 사적인 거라서요. 나의 이야기를 쓴다는 게 아직은 부담스러워요. 쓰고 싶지만, 쓸 수가 없어요."
그렇군요, 어쩔 수 없었군요.
"저만의 개성 있는 글을 쓰려면 준비를 좀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무 글이나 막 쓰면 안 되잖아요. 팔리는 글을 쓰려면 내공을 쌓아야 한다고 누가 그러던데요. 당장 글을 쓰고 작가가 되고 싶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어쩔 수 없었군요.
그렇군요, 어쩔 수 없었군요.
남들이 이렇게 말해준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요? 쓰지 않은 건 나 자신입니다. 이런 말이 위로가 됩니까?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나요? 스스로 글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에 정당성을 갖게 됩니까? 마음이 좀 편해지나요?
글쓰기 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마찬가지입니다. 자신과의 약속. 하기로 한 일은 그냥 하는 거지요. 하지 못했을 땐 어떠한 변명이나 핑계를 대서도 안 됩니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 하지 못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도 한 때 남들한테 제 상황을 '설명하기' 급급했습니다. 이래서 못했다, 저래서 못했다,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합리화를 하고 나름 정당하다고 우겨대도 결국 하지 않은 건 하지 않은 겁니다.
남들이 아무리 인정해주고 고개를 끄덕여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내가 져야 합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따뜻한 위로(?) 따위에 마음 약해져서는 안 됩니다. 인생은, 남들한테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이 아니라 스스로 책임지는 길입니다.
'노력'이라는 말, 참으로 무서운 표현입니다. '열심히 노력했다'는 한 마디가 엄청난 방패막이가 되지요. 본인이 열심히 했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정말로 더 할 수 없었는지. 노력, 열심, 최선 등의 말이 얼마나 찬란하면서도 무서운 표현인지 절실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힘들어서 도저히 못 하겠다 싶을 때, 눈앞에 커다란 벽이 떡하니 가로막고 있을 때, 여기까지가 한계다 싶을 때...... 주변 사람들이 그 정도면 됐다고 할 때, 최선을 다했으니 그만 쉬라고 할 때, 건강이 염려된다며 어깨를 토닥일 때, 이젠 더 이상 어쩔 수 없지 않냐며 돌아서길 권할 때......
화가 나야 합니다. 화를 내야 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아무렇게나 단정짓는 세상과 타인을 향해 눈을 부릅떠야 합니다. 어디서 함부로 나와 내 삶에 선을 긋느냐고 말이죠.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잖아요? 세 줄 정도는 쓸 수있잖아요? 30분 정도는 덜 자도 되잖아요? 5분만 더 집중할 수 있잖아요? 할 수 있잖아요? 할 수 있잖아요?
어쩔 수 없었다는 축 처진 목소리보다, 결국은 해냈다는 울컥하는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의 인정과 위로로 나의 포기와 태만을 정당화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누구보다 자신에게 당당해야 합니다. 그게 삶이지요.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