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조건은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더 나은 상황을 바란다면

by 글장이


쓰는 삶은 감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노트북? 그딴 건 상상도 못했고요. 밥상 하나 없어서 방바닥에 엎드려 노트에 펜으로 눌러 썼지요. 허리 아픈 건 말할 것도 없고, 피가 거꾸로 돌아서 조금만 글을 쓰다 몸을 일으켜 세워도 머리가 핑 돌았습니다. 책상에 앉아 글을 쓸 수 있기만 해도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았지요.


출소 후에도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제가 매일 집에서 글만 쓰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막노동 나가기 전에 잠깐 글을 썼고, 지친 몸으로 돌아와 잠들기 전까지 글을 썼습니다. 책상은 여전히 없어서 방바닥에 어린 아들 공부 테이블 놓았고, 노트북은 10년 된 묵직한 녀석이었지요.


지금 저는 최신형 맥북과 갤럭시북 두 대를 사용하고 있으며, 여덟 평짜리 근사한 개인 사무실도 갖고 있습니다. 키보드, 독서대, 아이패드, 전자책 등 글 쓰는 사람이 갖출 수 있는 거의 모든 걸 소유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데 있어 환경과 조건이 크게 중요한 거라면, 저는 과거보다 지금 글을 훨씬 많이 쓰고 잘 써야 마땅합니다. 현실은 어떨까요? 그 시절에 비해 별로 나아진 게 없습니다. 오히려 실력 향상의 속도는 더 느려졌고, 쓰는 양도 조금 줄어든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이러한 환경과 조건을 갖추게 된 것이 마냥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불편해지더군요. 환경과 조건이 좋아진 만큼 글도 좋아져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 탓입니다.


더 좋은 시스템, 더 좋은 환경, 더 좋은 조건, 더 나은 상황. 사람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과거에 비하면 기적 같은 일상인데도, 저도 모르게 자꾸만 더 좋은 뭔가를 바라게 되는 것이죠.


형편없는 환경과 조건에서 글을 쓸 때는 아무도 저한테 글 잘 써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누가 봐도 상황이 마땅치 않으니 매일 꾸준히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기특하고 대견했을 테지요. 그러나, 환경과 조건이 충분히 좋아지고 나니까 다들 제가 글을 잘 쓰는 게 당연하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는 분위기입니다.


예전에는 상황은 별로였으나 글 쓰는 동안 마음은 자유로왔거든요. 지금은, 환경과 조건은 끝내주지만 쓸 때마다 부담스럽고 힘듭니다. 사는 게 좋아졌으니 글도 좋아져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겁니다. 좋은 노트북과 사무실을 얻은 대신 쓰는 자유를 잃은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부자는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더 바라는 게 없는 사람입니다. 행복은 더 좋은 환경과 조건이 아니라 강박과 스트레스 없는 자유로운 상태를 일컫는 말이지요. 마음 부자로 글 쓰고 싶고, 자유롭고 행복한 상태로 글 쓰고 싶습니다.


글 쓰는 삶을 함께 하는 많은 이들이 자신의 환경과 조건에 대해 불평하고 못마땅해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환경과 조건을 모두 갖추게 되면, 그 때는 상당한 수준의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될 거란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정신없이 바쁠 때는 시간만 있으면 좋겠다 하고, 여유가 좀 있을 때는 가족이 협조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하고, 가족이 협조를 해주면 노트북 등 시스템이 문제라 하고, 시스템이 갖춰지면 독서량이 부족하다 하고, 책 좀 읽어라 하면 집중이 안 된다 하고, 집중 좀 하라고 하면 근심 걱정 있다고 하고, 걱정이 뭐냐고 물으면 돈이라 하고, 해결 방법이 뭐냐고 물으면 정신없이 바쁘게 일해야 한다고 합니다.


환경과 상황이 글쓰기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라면, 저 같은 사람은 애초에 시작도 못 했을 겁니다. 조앤 롤링은 절대로 글을 쓰지 못했어야 합니다. 이지성, 장석주, 박경리, 조정래, 이외수, 김 훈, 공지영 등 누구 한 사람 '풍요롭고 편안하고 안락한 환경과 조건'에서 글 쓴 사람 없습니다.


글 쓰는 사람은 생산자입니다. 생산자의 자유는 주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죠. 매일 바쁘다면, 그 바쁜 와중에도 글을 쓰는 것이 극복이며 성취입니다. 노트북과 책상, 자신만의 공간이 없다면, 그런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스토리입니다.


내가 지금 이런 상황이다 라고 한다면, 바로 그 상황에서 글을 쓰는 것이 최선입니다. 더 나은 상황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환경이 아무리 좋아져도 더 나은 환경을 또 바라고 있을 테니 말이죠.


미래 어떤 모습이 되기만 하면 다 좋아질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5년 전을 한 번 돌아보세요. 대부분 사람은 5년 전보다 삶이 좋아졌을 겁니다. 그럼에도 지금이 5년 전보다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지요. 분명 계속 좋아지고 있지만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어떻게든 지금을 썩 괜찮은 상황으로 인식할 수 있다면, 인생 모든 순간을 좋은 상황과 환경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지금 쓸 수 있다면, 모든 날에도 쓸 수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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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위에서 뿌옇게 먼지 내려앉은 박스 하나를 내렸습니다. 삐뚤삐뚤 거칠게 써내려간 수많은 노트와 낱장의 종이를 꺼내 읽어 봅니다. 그러고는 다시 박스를 챙겨두고 시원한 냉수 한 잔 마십니다. 한동안 열어 보지 않았던 초심을 확인하고, 저는, 다시,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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