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을 위하여
"그렇게까지 독서를 해야 합니까?"
"책은 꼭 써야만 하나요?"
해야만 하는 일이 있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있다. 독서와 글쓰기는 후자다. 하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 없다. 그럼에도 나는 책 읽고 글 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아마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호기심이 생기나 보다. 왜 그렇게 읽기와 쓰기를 강조하는지.
첫째는, 내가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변화했기 때문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인생 통째로 바뀌었다. 감추고 숨기고 나만 알고 싶은데, 입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다.
읽기와 쓰기를 강조하는 두 번째 이유는, 속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나는 질주하며 살았다. 그러다 폭삭 망했다. 잠시라도 멈추는 법을 알았더라면, 그렇게까지 처참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텐데. 이제라도 괜찮다. 멈추는 법을 배웠고, 느리게 사는 방법을 알았다.
끝으로, 불편함을 감수하고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 성장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도 글 쓰기 귀찮고 책 읽기 지루한 적 많다. 쓴다고 다 그럴 듯한 글 되는 것도 아니고, 읽는다고 전부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어색하고 막막하고 두렵고 답답하다. 그럼에도 쓰고 읽는다. 쉽고 단순한 일은 사람을 틀에 가둔다. 더 큰 영역으로 확장하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며, 그 불편함이 다시 익숙해질 때까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미루는 경우 많다. 글쓰기와 독서가 대표적이다. 언젠가는, 때가 되면, 글감이 생기면, 여유 있으면, 바쁜 일부터 좀 끝내 놓고, 어느 정도 준비가 되면...... 마땅한 이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두렵거나 게으르거나 둘 중 하나다.
핑계와 변명이 생기는 원인은 '그 일'을 사뭇 진지하게 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가시적 결과물이 눈앞에 보인다면 누구도 망설이지 않을 텐데.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별로 진지하게 여겨지지 않는 탓이다.
한편으로는, '그 일'을 하는 행위에 있어 지나칠 정도로 심각하고 조심스러워서 한 번 하고 나면 진이 다 빠져버리는 것도 꾸준한 반복을 막는 이유가 된다. 어차피 '대작품'을 완성시키기는 힘들다. 초보 작가가 베스트셀러 작품 쓰는 것도 쉬운 일 아니고, 이제 막 독서를 시작한 사람이 철학자 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어떤 일에 도전하는 마음가짐은 조금만 더 진지했으면 좋겠고, 그 일을 실행할 때는 조금만 덜 심각하면 좋겠다.
나에게 글쓰기와 독서는 삶의 의미라고 믿는다. 진지하게 대한다. 글 따위 써서 뭐하냐고, 책 읽어봐야 아무 소용 없다고, 삐딱한 생각이 들지만, 그럴 때마다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며 숭고한 행위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어차피 계속 할 거라면, 어떤 일이든 우습게 보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반면, 글을 쓰기 시작하면 손가락을 멈추지 않고 계속 키보드를 두들긴다. 책 읽기 시작하면 이해가 되든 안 되든 편안하게 책장을 넘긴다. 지금 하는 '이 행위'로 지구를 구할 것도 아니고, 완벽하게 쓰고 읽지 못해도 인생은 계속 흘러갈 거란 생각으로. 옥죄는 부담이 줄어들수록 더 많이 쓰게 되고 더 자주 읽게 된다.
생각은 진지하게, 행동은 가볍게! 하루이틀 만에 결실 맺을 수 있는 일은 없다. 무슨 일이든 꾸준한 반복을 통해야만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반복하기 위해서는 가볍고 단순해야 한다.
하루키처럼 쓰면 사흘 못 넘긴다. 정약용처럼 읽으면 두 권 못 읽는다. 그건 나중에야 가능하다. 노력과 시간이 쌓여야만 제법 쓰고 읽을 수 있다.
정반대로 하는 사람 많다. 생각은 가볍게 하고 행동은 무겁게 한다. 그래서 생각만 한다. 달라질 리 없다.
하루라는 시간에 의미와 가치를 둔다. 진지한 태도로 마주한다.
해야 할 일들은 가볍게 '그냥' 한다. 강박과 틀을 벗어던지고 행위 자체를 즐긴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