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추는 시간
안경을 잃어버렸다.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집안 구석구석 찾아보았으나, 없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가 다닌 길을 짚어 보았다.
우체국에 가서 택배 부쳤다. 대리점에서 폰을 새로 했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렸다. 집으로 오는 길 마트에 들러 음료수를 샀다. 안경을 벗어놓았을 만한 곳. 어디일까?
아! 우체국! 택배 용지에 주소를 기입하려다 깨알 같은 글씨가 보이지 않아 안경을 벗었다. 그리고는 포장을 했고 안경은...... 아마 포장 작업을 하는 테이블 위에 그대로 두었을 터다.
등산을 하다가 길을 잘못 든 적이 있다. 여기쯤 돌무덤 하나가 나와야 하는데, 가도가도 낯선 길 뿐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몸을 틀어 온 길을 되돌아 간다. 천천히 걸으면 주변 풍경이 눈에 익어 자칫 더 길을 잃을 우려가 있다. 빠른 걸음으로 온 길을 되돌아간다. 어디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방향이 시작된 걸까?
되돌아가다 보면,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반갑다. 기쁘다. 찾았다! 잠시 바닥에 앉아 숨을 고른다. 등산을 두 번 한 셈이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다. 그럼에도 세상 안심이다.
수학 공부 꽤 열심히 했던 적 있다. 아예 공식을 모조리 외워버리자, 작심하고 문제를 풀었다. 수학은 인간의 감정과 직결되는 학문이다. 내가 풀어낸 최종 결과와 모범답안지에 나온 숫자가 일치하는 순간, 그 쾌감은 표현하기 힘들 정도이다. 반면, 애써 풀어낸 답이 정답을 비껴간 경우 좌절과 절망에 세상이 무너진다.
오답이 나왔을 때, 내가 풀어낸 과정을 거꾸로 짚어 간다.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어디서 착오가 있었던 것일까.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다가 잘못 표기한 숫자 하나 딱 찾는 순간, 가슴은 요동을 친다.
인생만큼은 되돌아갈 수 없다.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어디서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어느 시점에서 실수를 했는지. 걸어온 길 되짚어 찬찬히 다시 살고 싶은 때가 있지만, 불가능하다.
유일한 방법은 내 앞에 펼쳐진 길. 후회와 원망과 번민을 껴안고 살아야 한다.
글쓰기는 이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만든다. 살아온 길을 다시 걸을 수 있다. 그 때 일어난 '순수 사건'을 바꿀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한 '언어 사건'은 다시 해석하고 풀어낼 수가 있는 것이다.
증오는 용서로, 아픔은 치유로, 원망은 배려로, 상실은 사랑으로, 그 모든 것들을 추억으로. 백지 위에 펼쳐 놓는 나의 언어로써, 삶을 다시 풀이하는 과정. 이것이야말로 글 쓰는 행위 최고의 가치라 할 수 있겠다.
앞만 보며 질주하는 세상. 지금 우리에겐 멈춤이 필요하다. 크게 심호흡하는 시간 가져야 한다.
안경 찾으러 가야겠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