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그게 뭔데?

그 사람이 되어 보는 것

by 글장이


힘들어서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다면서 울먹이며 전화를 하는 작가가 있었습니다. 뭐가 그리 힘드냐고 물었지요.


"작가님! 도저히 저만의 색깔을 찾을 수가 없어요!"


당신은 살색이니까 그냥 쓰라고 했습니다. 난 또 누가 권총이라도 들고 머리를 겨누고 있는 줄 알았다고. 그랬더니 무안하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 후로 자주 만났습니다. 자이언트 행사 때마다 열심히 참여하고, 지금은 글도 잘 쓰고 있습니다. 매번 웃으면서 말합니다. 그때 이은대라는 사람, 참 공감할 줄 모르는구나 생각했다면서 말이죠.


60세가 넘은 어느 작가님과도 통화를 한 적 있습니다. 자신은 나이가 너무 많아서 글을 쓰기가 힘들다고 했습니다. 정확한 나이는 말하지 않은 채, 자꾸만 나이가 많다 나이가 많다 하길래 대체 몇 살이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예순 몇이라고 하는 겁니다.


자이언트에 일흔 넘은 분도 많습니다. 아홉 살 작가도 있습니다. 글 쓰는 데 나이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차라리 그 작가님이 컴퓨터 다루는 게 익숙지 않아 힘들다고 했더라면 제가 조금은 이해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나이가 많아서 글 쓰는 게 힘들다는 작가님한테, 저는 도저히 공감을 할 수가 없었지요. 괜한 핑계 대지 말고 당장 쓰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어머니는 오늘 친구들 모임에 다녀오셨습니다. 이제 혼자서 외출까지 할 정도 되었으니 다리가 많이 괜찮아졌나 봅니다. 식구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행입니다.


집에 와서 소파에 걸터 앉아 큰 숨을 내쉬는 어머니가 아버지 곁에서 입을 엽니다. "오늘 누가 내 보고 피부에 탄력이 없다고 뭐라 하던데요."


아버지는 무심히 리모컨을 만지며 TV를 보고 계십니다.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았지요. 어머니는 계속 말을 붙입니다. "사람이 말을 하면 대꾸라도 좀 하소! 누가 내 보고 피부에 탄력이 없다 카더라니까요!"


"피부가 농구공이가. 팔십 넘어가 무슨 놈의 탄력 타령이고."


그 후로도 한참 동안 두 분은 티격태격하셨습니다. 어머니 입에서 '공감'이란 단어가 몇 번이나 나왔습니다. 거실을 오가며 두 분 대화를 다 들었지요. 처음에는 그저 웃다가, 저도 곰곰이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말씀이 백 번 맞는 것 같았거든요. 아버지 말씀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냥 당신 피부 그만하면 괜찮다, 쓸데없는 소리에 신경쓰지 마라, 그 사람이 당신한테 샘이 나서 그런 모양이다, 한 마디만 했어도 아무 문제 없었을 텐데 말이죠.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문득 나 자신은 어떠한가 짚어 보게 되었습니다. 살면서 누구한테 공감 잘해준다 소리 들은 적 없습니다. 오히려 대화가 안 통한다, 너무하다 같은 말만 들었지요.


공감이란 무엇일까요? 온전히 그 사람이 되어 보는 겁니다. 동정심이나 측은지심과는 다릅니다. 노숙자를 보면서 불쌍하다 여기는 마음은 공감이 아닙니다. 마음으로나마 나 자신이 노숙자가 되어 봐야 합니다.


점심은 먹었을까? 오늘 밤에 잘 곳은 있을까? 저 사람한테도 가족이 있을까? 어쩌다가 저런 신세가 되었을까? 저 사람은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조금은 따뜻하게 밤을 보낼 수 있어야 할 텐데. 배는 곯지 말아야 할 텐데.


잘은 모르지만, 적어도 이 정도까지 생각이 닿아야 공감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냥 말로 위로하는 공감은 진정한 공감이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힘들다는 사람한테 아이고 쯧쯧쯧 힘들겠구나 한 마디 던지는 것이 과연 무슨 공감이 될까요?


저도 한때 누군가의 공감이 절실했던 적 있습니다. 때로는 공감을 받아 위로가 되기도 했고, 또 다른 때는 공감받지 못해 서럽기도 했습니다.


공감도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공감보다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도록 도와주자'는 쪽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화를 들으면서, '따끔한 한 마디'도 중요하겠지만 '따뜻한 공감'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우리 자이언트 작가님들이 이 글을 읽으면, 다들 '그래그래, 이은대 작가는 공감할 줄 알아야 해!'라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제가 공감을 잘했다 싶은 적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거든요.


이건 좀 다른 얘기입니다만, 어머니한테 피부 탄력이 어쩌고 했다는 그 사람도 참 매너가 없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서 좋은 얘기만 해도 될 텐데, 뭣하러 굳이 피부 탄력이 어쩌고 해가지고 집안에 분란을 일으키는가 말입니다.


타인을 향만 말은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상처가 될 수도 있고 아픔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무슨 상담이나 교육을 하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 모임에서 무슨 오지랖을 그리도 떠는 것인지.


오늘 밤, 집안은 냉전입니다. 아마도 내일 아침까지 이어질 듯합니다. 그놈의 피부 탄력 때문에.


그나저나 모레 토요일에는 아버지 등산 가시는데요. 어머니께서 간식을 싸주지 않으면 등산 못 가실 텐데 걱정입니다. 지금 분위기라면 있는 간식도 빼앗길 판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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