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말과 행동, 자신 있는가?
"이왕에 쓸 거면 베스트셀러 써야 하지 않나요? 세상이 그렇잖아요."
내가 글쓰기나 책쓰기의 본질을 '사람을 위한다'는 사실로 풀어낼 때마다 위와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꼭 있었다. 내 삶의 경험으로 타인을 돕는다는 말은 누군가의 심장을 불편하게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나는 내 생각대로 글 쓰고 강연하면 될 일이고, 다른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의 방식 대로 쓰고 말하면 될 일 아닌가.
그럼에도 위와 같은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과 5분 정도만 대화를 나누고 나면, 항상 상대는 기분 언짢아 했다. 윽박지른 것도 아니고 욕을 한 것도 아닌데. 그저 나의 주관과 철학을 덤덤하게 말했을 뿐인데. 상대는 왜 화를 내는 것일까?
나는 누군가 "돈과 성공을 위해 글 쓴다"는 말을 해도 전혀 화가 나지 않는다. 그건 그 사람의 생각일 뿐이니까. 게다가, 그런 생각과 말을 하는 사람조차 실제로는 베스트셀러를 쓰지 못할 거란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는 작가가 쓰는 게 아니라 독자가 만드는 것이다. 작가는 그저 진심과 정성으로 자신의 글을 쓸 뿐.
글쓰기/책쓰기의 가치에 대한 내 말을 듣고 화를 내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아픈 거였다. 양심에 찔리기 때문.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나의 말이 옳다는 신호가 울리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대체 무엇 때문에 화를 낸단 말인가.
'현실'이라는 말에 어느 정도는 공감하고, 또 이해도 한다.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하는 시대에, 베스트셀러 한 권 써서 인생역전 이뤄내면 다 좋은 것 아니겠는가. 점심으로 라면 먹고 싶다 해서 뚝딱 끓여 먹을 수 있는 차원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생각이 필요하고, 생각은 삶을 통해 만들어진다. 잘 살아야 생각도 반듯해지고, 생각이 맑아야 인생도 좋아진다. 생각과 삶이 투명하면 글은 저절로 좋아지게 마련. 돈과 명성을 목표로 글을 쓰려는 이들의 생각과 삶이 어느 정도 맑고 투명할 것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논쟁하고 싶은 마음 전혀 없다. 지난 삶을 통해 어떤 논쟁이든 시간 지나고 나면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옳다는 주장도, 상대방이 틀렸다는 검증도, 불과 3년만 지나면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결국은 사라질 연기 같은 것들 때문에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낼 가치 전혀 없다는 것이다.
10년 넘게 매일 글을 쓰고 있고, 7년 넘는 시간 동안 [자이언트 북 컨설팅]이라는 일인기업 만들어 쓰는 삶 나누며 살고 있다. 긴 시간이다. 나한테 토론 한 번 하자며 제안하는 사람 없었다. 다들 뒤에서 몰래 험담을 하거나, 내 자료 훔쳐다 '별로다' 라고 강의하는 식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타인의 자료를 도용하거나 다른 책쓰기 수업 내용을 빌려 쓴 적 없었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 강의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다. 온전히 내 삶에서 비롯된 내용으로만 글 쓰고 강의한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10년이고 7년이다. 뭔가 잘못된 게 있었다면 일찌감치 흔들리거나 무너졌지 않겠는가.
사업 실패하고 돈 문제 해결 못 해서 감옥에까지 다녀왔다. 인생 전반의 점수는 빵점. 치욕스럽고 모욕적이었다. 아팠고, 힘들었다. 이를 갈고 심정 뜯으며 다짐했다. 오직 바른 길만 가 보자고. 손발 오그라들고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 많겠지만, 그래도 글쓰기 만큼은 양보하지 말자고.
가치관과 철학까지 갖지 못했던 애송이는 어쩔 수 없이 '그런 척' 하면서 쓸 수밖에 없었다. 사람을 위한 글, 타인을 돕는 글, 경험이 바탕 되는 글,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글. 나도 사람이라 '돈 되는 글' 유혹에 솔깃한 적 없지 않았다. 지금 나 자신에게 잘 참았다 말해주고 싶다. 덕분에 벽돌 하나 빠지지 않는 탄탄한 자이언트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사업의 기준은 명확하다. 내 자녀에게,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털끝 만큼의 부끄러움도 없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예스라고 답할 수 있다면 그 무엇이라도 밀어붙일 수 있어야 한다. 마흔을 불혹이라 했던가. 요즘은 마흔이 가장 많이 흔들리는 나이다. 온갖 달콤한 말과 글이 귀를 간지럽히겠지만, 자기 안에 숨 쉬는 양심과 원칙과 기준을 한치도 양보하지 말아야 한다. 인생이 당당해야 말과 글이 힘을 갖는다.
육상 경기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우승이 목표라고 해서 옆 사람 붙잡고 넘어뜨릴 순 없지 않은가. 속도를 높이기 위해 약물을 복용하는 일도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남의 것을 훔쳐 자기 것인양 도용하는 짓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얕은 지식으로 세상 다 아는 것처럼 떠벌리는 행태도 수치스러운 줄 알아야 한다.
이 모든 태도가 양심에 찔리는 행동이다. 당당한 듯하면서도 피해다니고, 멀쩡한 듯하면서도 뚜껑 열어 보면 엉망이고, 버젓이 사는 것 같아도 천둥 치면 깜짝 놀라는 인생들. 나도 한 때 그리 살았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내가 나를 속이는 행위가 얼마나 삶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것인지 깨달아야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문제가 커지기 전까지는 그것이 문제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사업에 실패하기 직전까지 위기임을 알지 못했다. 감옥에 가는 순간까지 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아들의 한숨을 듣기 전까지 술을 끊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삶이 얼마나 엉망이 되어가고 있는지, 나만 몰랐다.
글 쓰면서 달라졌다. 달라지도록 노력했다. 생각을 하게 되었고, 삶을 돌아보게 되었으며, 매 순간 내가 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때로 놀랍기도 했고, 섬짓하기도 했으며, 쥐구멍에 숨고 싶기도 했다. 바꿔야 할 것도 많고 더 노력해야 할 점 셀 수 없지만, 적어도 과거 내 모습에 비하면 기적 같은 변화다.
이러니 내가 글쓰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돈과 명성 따위를 위해 베스트셀러 쓰겠다는 이들 보면 안쓰럽고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나 한 사람의 힘으로 쓰는 삶의 본질을 다 전하고 세상 바꿀 수는 없겠지. 허나, 나와 함께 하는 이들의 눈빛 정도는 바꿀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언젠가 삶이 다하면, 또 누군가 나서서 "잘 쓰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고 외쳐주길 소망해 본다. 아니, 지금 이 순간 함께 하는 우리 작가님들이 나서서 삶을 담은 글이야말로 사람들 가슴에 울림을 준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주길 바라 본다.
더디게 가도, 잘 살았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삶이 멋지지 않겠는가. 책 내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바르게 사는 게 문제지.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