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다고 말하기 힘든 세상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기를

by 글장이

인력시장에서 약 3년간 일한 적 있습니다. 흔히 '노가다 잡부'라고 하지요. 전문 기술 없이 현장에서 시키는 일을 합니다. 모래와 벽돌을 나르기도 하고, 삽질을 하기도 하고, 철거나 펜스 작업 등 그날 잡히는 일을 닥치는 대로 하는 것이지요.


워낙 중노동이라 중간중간에 쉬는 시간을 갖습니다. 담배를 태우기도 하고 커피 한 잔 마실 때도 있습니다. 오랜 시간 막노동을 한 사람들과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는데요.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쉬면서 힘들어 죽겠다고 했더니, 옆에 있던 선배(?)가 한 마디 합니다.


"너 그러다가 일 다 끊긴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내가 뭘 어쨌다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막노동 현장을 총괄하는 사람은 업체 담당자 또는 사장입니다. 일당 주면서 일 시키는데, 이왕이면 적극적으로 시원 시원하게 일하는 사람 좋아하겠지요. 인상 쓰고 한숨 쉬면서 현장 분위기 망치는 잡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20년 넘게 직장생활 하고 있는 친구 K가 승진했다며 연락 왔습니다. 술을 끊었기 때문에 밥 한 끼 먹고 차 마시며 대화 나눴지요. 지낼 만하냐고 물었더니 힘들다고 합니다.

"너도 직장생활 해 봤잖아. 할 만해서 하는 게 아니야. 가족도 있고, 먹고 살려면 열심히 해야지. 그래도 이렇게 승진도 하고, 이제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몇 해 전에 K 만났을 때는 회사 당장 때려치울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잘 견뎠으니, 잘했다 해야 할지 어째야 할지 몰라서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K가 회사에서는 어떻게 생활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친구들끼리 만나면 힘들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합니다. 회사에서도 그러냐고 물은 적 있는데요. 정색을 하고는, 큰일날 소리 한다며, 회사에서는 한숨도 크게 쉬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이도 있고, 여차하면 회사에서 쫓겨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힘들다고 하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당당하고 다부진 친구지만, 그래도 생계가 걸린 회사에서는 성질 많이 죽이고 사는 모양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생활 잘했으니 승진도 했을 테지요.


제가 감옥에 있을 때도 "힘들다"는 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조금만 인상을 써도 방 사람들이 분위기 망친다며 구박을 주었지요. 한숨 소리 크게 나면 난리가 납니다. 입 꾹 다물고, 있는 듯 없는 듯 지내야 했습니다. 다행히 저는 글 쓰며 시간 보냈으니 시비 붙을 일은 없었습니다.


집에서 온 편지 받으면 혼자 화장실에 들어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속상한 일 있으면, 30분 주어지는 운동 시간에 밖에 나가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요. 독방에 있을 때는 머리를 벽에 박으며 꺽꺽 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더워도 덥다 소리 못하고, 추워도 춥다 말 못하고, 힘들어도 힘들다 얘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감옥이지요. 잘못을 뉘우치고 갱생해야 하는데, 모든 감정을 가슴 속에 꾹꾹 눌러담고 있으니 미치광이가 되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힘들어고 힘들다는 말 하지 못하는 세상


혹시 지금이 이런 세상일까요? 자칫하면 쫓겨날까 봐, 여차하면 찍힐까 봐, 주변 사람들 분위기 망칠까 봐...... 힘들고 아픈 감정 모두 감추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살아야 하는 그런 세상 말입니다.


오늘 낮에 볼일이 있어서 사무실에 잠깐 들렀다 오는데, 건물 입구 그늘에 길고양이 한 마리가 늘어지게 누워 있더군요. 대구 날씨 워낙 더워서, 벌써 30도 넘습니다. 공기와 햇살이 뜨거워서 그늘에 딱 자리를 잡은 모양입니다. 사람이 가까이 가도 꼼짝도 하지 않고 눈만 꿈뻑입니다. 늘어져 누워 있는 그 모습이 참 편안하고, 상팔자구나 싶어 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인간이 고양이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감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지요. 고양이는 힘들면 자빠져 쉬면 됩니다. 사람은 그럴 수 없잖아요. 힘들다 말은 할 수 있어야 숨통이 트이지 않겠습니까. 쉬고 싶을 때 쉴 수도 없고, 책임 막중하고, 인공지능과 싸워야 하고, 위아래 잔소리 눈치 보기 급급하고...... 이런 상황에서 '힘들지 않은 척'만 하고 살기는 그야말로 힘들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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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헌날 힘들다는 말 습관적으로 달고 사는 것도 물제가 있습니다. 그건 힘든 게 아니라 사람 자체가 부정적일 가능성 크기 때문이죠. 허나, 몸과 마음 지칠 때로 지쳐서 정말로 힘든 때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입니다. 기댈 곳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또 다른 경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다른 사람한테 이런 말을 하기가 싫거든요. 언제 어디서든 강하고 듬직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과거 삶에서 약해빠진 못난 모습 충분히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강하고 멋진 모습으로만 살고자 합니다. 이러다 보니, 마음 속에 스트레스 더 쌓이는 것이죠.


가끔씩 친구들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아무 눈치도 볼 필요 없고, 이해관계도 없으며, 서로 긴장하지 않아도 되고, 무슨 말을 해도 편안하게 들어줄 수 있는 그런 친구들 말입니다.


힘들 때는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 지친다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힘내라는 말, 토닥토닥, 그런 거 없이 그냥 가만히 들어주는 내편이 있다면, 인생 지금보다 훨씬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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