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려면 고요한 곳이 필요하다?

패배가 아니라 극복

by 글장이


막노동 현장에서 일할 때, 발목을 삐긋한 적 있습니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니라 여겼는데, 날이 갈수록 복숭아뼈가 부어오르고 걷기조차 힘이 들었지요. 통증이 심해져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정형외과에 갔더니 단순 염증이긴 한데 너무 무리해서 상태가 심각하다 하더군요. 의사는 무조건 쉬어야 한다며 일주일치 약을 지어주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방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온갖 걱정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데, 발목 때문에 일을 못하면 생계가 어려울 지경이었지요. 집안에 돈 버는 사람 저 하나밖에 없고, 어린 아들 공부도 시켜야 하고, 아버지와 어머니 끼니도 때워야 하는데......


심란하니까 속도 울렁거렸습니다. 책을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글을 써도 마음이 놓이질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빨리 회복하고 일을 나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지요. 밤에 자려고 누우면 천장이 뱅글뱅글 돌아가고, 밥을 먹어도 목구멍에 턱턱 막혔습니다.


며칠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글도 제법 잘 써지고, 일도 잘되고, 가족 모두 건강하고...... 가만히 돌아보니 제 삶에 아무런 문제가 없더라고요. 문득 내가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4층에 살고 있는데요. 바로 앞에 아파트 농구코트 있거든요. 날이 좋고 하니까, 학생들이 그 곳에서 농구를 합니다. 낮에는 별 문제 없지만, 밤 8시가 넘어서까지 농구를 하면 바닥에 퉁퉁 공 튀기는 소리가 낮보다 훨씬 크게 들립니다.


예전 같았으면 밖으로 뛰쳐나가 한밤중에 농구하고 지랄이냐고, MBA 나갈 거냐고, 소리를 버럭 질렀을 겁니다. 하지만, 그 날은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 날, 밤 열 시가 넘어서야 아이들이 농구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거든요.


세상이 아무리 조용해도 내 머릿속이 복잡하면 그보다 더 큰 소음은 없습니다. 주변이 아무리 시끌벅적해도 내 마음이 평온하면 그야말로 절간이지요. 살다 보면, 작은 소음도 귀에 거슬릴 때가 있고요. 웬만큼 시끄러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소리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모두 우리 마음 상태가 좌우한다는 뜻입니다.


소리뿐만 아닙니다. 마음이 불편할 땐, 옆에 있는 사람이 대수롭지 않은 말을 해도 귀에 딱 거슬립니다. 마음이 평온할 때 다소 불편한 말을 들어도 우습게 넘기지요.


기분이 더러울 땐 비가 내리는 것도 시비거리가 됩니다. 기분이 유쾌하고 즐거울 땐 빗소리도 음악으로 들리지요. 걱정이나 근심이 있을 때는 진수성찬 차려놔도 입맛 없습니다. 행복하고 편안할 때는 라면에 김치만 먹어도 배부릅니다.


집에서는 도저히 글을 쓰기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 있습니다. 가족 때문에 시끄럽고 방해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노트북 싸가지고 스타벅스 갑니다. 집이 시끄러울까요, 아니면 카페가 더 시끄러울까요? 소음기로 측정해 보면, 아마 카페가 집보다 훨씬 소란스러울 겁니다.


부부싸움 해가지고 기분 더러워서 글을 쓰지 못하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약속한 날짜에 원고를 제출하지 않길래 전화해서 물었더니 당당하게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저 오늘 속상해서 글 못 쓰겠어요!"

전화 끊고 나서 생각했지요. 언제는 썼냐?


머리 아프고, 허리 아프고, 팔이 아프고, 목이 아프고, 손가락이 아프고...... 처음에는 자이언트에 환자만 오는 줄 알았습니다. 글쓰기 과정인데 병원으로 잘못 알고 오는 건가. 심지어는 간이 아프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냥 배가 아픈 것도 아니고 간이 아프다니. 그럼 십이지장 아픈 것도 쓸개 아픈 것도 전부 느낄 수 있단 말이잖아요. 그냥 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떤 도전이든 하지 못할 핑계는 2만 5천 개쯤 됩니다. 그런 핑계가 '하지 않는 자신'을 단단하게 보호해준다고 느끼는 사람 많을 겁니다. 합리적이며 마땅한 이유와 변명이 되는 것이죠.


도전하는 사람은 어떨까요? 실행하는 사람에게는 하지 못할 핑계가 없는 걸까요? 아닙니다. 그들에게도 똑같이 2만 5천 개의 이유와 변명이 늘 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여기에 있지요. 성공하는 사람은, 어떤 이유와 핑계와 변명 속에서도 "그냥" 합니다.


"무엇 때문에 하지 못했다"는 말은 졌다는 뜻입니다. 세상에 졌다는 의미지요. 소음에 지고 아픔에 지고 기분에 지고 환경에 지고 상황에 지고 조건에 진 겁니다. 나 패배자다! 외치는 것이나 똑같습니다. 나 패배자니까 좀 봐줘라! 나 이렇게 불쌍하다! 나 이렇게 못났다! 난 내 인생 이렇게 망가뜨리며 살고 있다!


누구도 나에게 글 쓰라고 강제한 적 없습니다. 누구도 나한테 운동하라고 명령한 적 없습니다. 누구도 나한테 공부하라고 지시한 적 없습니다. 모두가 나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선택한 것이죠. 스스로 하겠다고 해놓고, 계속 하지 못하는 이유와 핑계만 늘어놓습니다.


달라져야 합니다. 주변이 좀 시끄러우면, 오늘은 시끄러운 와중에도 글을 썼다는 '승리'를 맛보아야 합니다. 속상한 일이 있었다면, 오늘은 속상한 일이 있었음에도 글을 썼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과 환경이 나로 하여금 무엇을 못하게 가로막는다면, 그것을 기꺼이 뛰어넘어 해내고야 말았다는 인정과 칭찬을 자신에게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어떤 악당을 만나 박살났는지 쭈글이처럼 징징대지 말고, 오늘 만난 악당도 역시나 멋지게 물리쳤다는 환호성 지르는 밤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내 인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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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를 말하는 시간이 많은지, 극복을 말하는 시간이 많은지. 두 가지 체크해 보면 앞날이 훤히 보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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